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누락된 순직자 찾기 프로젝트’
1958년 입대한 김종원 이병, 9개월 만에 감염병 사망
재조사 통해 군 복무 연관성 찾아내 ‘순직’ 절차 진행
‘민원이 제기된 군 사망사고만 조사 가능’ 규정에 따라
민조단, 적극적으로 유가족 만나 안내·재조사 신청 도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인데 많이 늦어졌습니다” 사과 전해
11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 든든한 형이자 오빠였던 스물한 살 청년은 ‘앳된 얼굴’로 동생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게 됐다. 1958년 육군에 입대한 김종원 이병은 복무 9개월 만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군에서 감염병을 앓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김 이병은 ‘순직’ 판정을 받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른 1989년 군 복무 중 발생·악화한 질병 사망을 순직 처리하도록 훈령이 개정됐을 때도 누락됐다.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민조단)은 김 이병의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바로잡기 위해 수개월간 먼지 쌓인 책장을 넘겼다. 그들이 찾아낸 낡고 바랜 종이에 쓰인 희미한 기록은 동생들조차 백발이 될 때까지 잊고 살았던 형제의 잃어버린 명예였다. 국방일보는 민조단의 군 사망사고 재조사 중 마지막 절차인 유가족 설명회를 동행했다. 글=김해령/사진=조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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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아파트. 최용호(군무서기관) 민조단 1조사대장과 담당 조사관인 고병현 해군원사, 정민영 공군상사는 이날 김 이병 사망사고 재조사 민원인을 만나고자 차로 5시간을 달려왔다. 이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일은 넥타이를 매는 것이었다. 유가족을 만나기 전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유가족 설명회 장소는 김 이병의 여동생 집이었다. 집에는 다른 동생 2명도 함께 있었다. 최 대장은 정중히 인사한 뒤 먼저 고인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할 것을 제안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 후 고 원사가 본격적으로 사망사고 재조사 결과를 유가족에게 보고했다.
민조단은 오랜 시간 김 이병의 기록을 추적했다. 입원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장소인 36육군병원의 입원환자 등록부, 확인발령대장(전사망자 명부), 순보철 등 관련 서류를 확보해 하나하나 뒤지며 사망 원인이 군 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했다.
김 이병은 1937년 3월 27일생으로, 1958년 2월 14일 입대해 육군군의학교에 배속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14일 결핵성 뇌막염과 결핵성 복막염 진단을 받아 36육군병원에 입원했다. 의무병이 되기 위한 후반기 기초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이후 같은 해 11월 24일 오전 6시경 사망할 때까지 약 9개월간 복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 원인은 결핵성 뇌막염과 심낭염이었다.
민조단은 병적 기록과 군 내 보관 중인 전사망자 명부 등을 종합했을 때 김 이병이 질병인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일관되게 기록됐음을 확인했다. 이에 결핵 사망과 군 복무의 연관성을 찾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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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사관들은 『6·25전쟁 환자통계연보』 책자에서 1950년대 관련 통계를 찾아봤다. 그 결과 당시 병력 62만여 명 중 결핵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는 5140명, 1000명당 8.26명의 유병률이었다. 1957년을 기준으로 총사망자 1184명 중 결핵 사망자가 418명으로 분석돼 결핵이 높은 전염성과 치사율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군 복무와 결핵 발병의 연관성도 조사했다. 또 앞선 육군본부의 질병 사망자 일괄 심의에서 빠진 이유도 파악해 봤다. 국방부는 1989년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개정에 따라 복무 중 질병으로 병·변사 처리된 인원을 순직 처리하도록 했다. 1996~1997년 4만5804명의 대상자를 4차례 심의, 9756명이 ‘전사·순직’으로 일괄 변경조치됐다. 그러나 김 이병은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
민조단은 1997년 육군본부 의무감실이 “결핵성 질환은 관련 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급만성 소모성 질환으로 열악한 환경에서의 단체생활, 교육훈련 스트레스, 불충분한 영양 섭취 등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결핵질환자를 모두 순직 처리한 사실을 알아냈다. 전문기관에서도 결핵 사망과 군 복무 간 연관성이 있음을 뒷받침해 줬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고인의 사인은 결핵이 맞으며, 결핵은 환자와 접촉으로 감염되기에 밀집생활을 하는 당시 군 단체생활관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냈다.
민조단은 재조사 결과를 종합해 “김 이병의 사망은 군 복무와 관련 있다”는 민원인의 주장에 합리성과 타당성이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과거 일괄 순직 시 빠진 데 대해선 민조단이 관련 부서에 질문했으나 “당시 자료가 없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민조단은 ‘행정오류’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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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병의 여동생은 “어머니가 1997년에 돌아가셨는데, 오빠가 누락되지 않고 순직 처리되는 걸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이병 사망사고 재조사는 김씨 남매들의 민원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어렸던 남매는 형·오빠의 죽음이 어떻게 구분됐는지 노인이 돼서도 알 길이 없었다. 민조단은 지난해 8월 군 사망사고 재조사 중 김 이병을 비롯해 질병 사망임에도 순직 판정을 받지 못한 28명을 찾아냈고, 김씨 남매를 포함해 5명의 유가족과 연락이 닿아 재조사 민원·순직 재심사 신청을 안내했다. 김씨 남매도 민조단의 안내 덕에 민원을 넣을 수 있었다. 민조단은 ‘국방부조사본부령’에 의거해 ‘민원이 제기된 군 관련 사망사고’만 조사할 수 있다.
김씨 남매는 재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순직 재심사는 시간이 수년 정도 걸리는 편이지만, 이번 건은 질병 사망의 순직 처리라는 비교적 명확한 사례여서 보다 빠르게 희망적 결과가 나올 것으로 조사관들은 기대하고 있다. 순직 판정이 나면 김씨 남매는 사망보상금을 받는다. 이와 함께 추후 국립묘지 안장, 국가유공자 등 국가보훈부 심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김씨 남매에게 형·오빠는 어린 시절 기억뿐이다. 김 이병이 사망한 1958년 남매들은 열일곱, 열셋, 열 살이었기 때문이다. 남매는 민조단의 조사가 시작되고 67년 만에 형·오빠의 사진도 발견했다. 조카가 갖고 있던 사촌 결혼식 단체사진에 김 이병의 모습이 찍힌 것. 지금 남매가 형·오빠를 추억할 수 있는 건 낡은 흑백사진뿐이지만 같이했던 어린 날의 기억은 생생했다. 이날도 기억 속 김 이병을 꺼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생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오빠가 군대에서 그렇게 가신 줄로만 알았지, 순직이 되는 줄은 참말로 몰랐십니더. 어째 갔는지 이제야 소상히 알게 됐십니다. 참말로 고맙십니더. 우리나라 진짜로 좋은 나라입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 기록이라도 찾아 명예회복을 도와드렸을 겁니다. 국가의 당연한 책무인데, 많이 늦어졌습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 이병의 여동생이 감사를 전하자 최 대장은 사과로 답했다.
이날 마산 곳곳에는 ‘봄의 전령’인 매화가 피었다. 한파도, 폭설도 오는 봄을 막을 순 없다. 군 사망자도, 유가족의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군에서 사망한 ‘미순직자’의 명예를 되찾아 주는 민조단의 ‘누락된 순직자 찾기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은?
가상의 군 내 사망사고 시나리오를 써 보자. A 간부는 일과 후 선임의 저녁식사 권유에 사적 약속을 취소하고 이동하던 중 달려오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 각 군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A 간부의 사망과 군 업무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일반사망, 즉 ‘미순직’ 처리했다. 과연 A 간부는 순직 판정을 받을 수 있을까?
A 간부가 약속을 취소하고 선임과 저녁을 택한 건 군의 위계질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그가 사망할 일은 없었을 거란 얘기다.
국방부조사본부 민조단은 이 같은 군 내 사망사고 중 유가족 민원이 있을 때 재조사 임무를 수행하는 전군 유일의 기관이다. 민조단은 사건의 평면만을 보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사건 경위를 자세히 파악하고 군 업무와의 연관성을 고민한다. 민조단은 종합적인 재조사 결과를 내고, 민원인은 이를 바탕으로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요청한다.
군은 우리 장병의 사망을 최대한 ‘가치 있는 죽음’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2022년에는 관련 법령인 ‘군 인사법’을 개정해 의무복무 중인 군인이 사망할 경우엔 순직자로 일단 분류하기로 했다.
인터뷰 - 탁경국 변호사
“직권조사권 부여 시급 군 신뢰도 향상 기대”
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 상임위원…민·군 함께하는 조사기구 필요성 제시
“당장 급한 건 군에 직권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법 개정으로 군 내 사망사고 재조사를 직권조사할 권한을 준다면 군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일조하게 될 겁니다.”
과거 대통령 직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탁경국 변호사는 지난 14일 국방일보와 만나 “전사·순직 재심사는 유가족의 신청이 있거나 국민권익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경우에만 이뤄진다. 국방부에도 직권조사권을 부여한다는 ‘한 조항’만 법에 추가하면 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위원회는 2018년 9월 출범해 2023년 9월까지 1787건의 진정사건과 66건의 직권사건을 조사했다.
국방부조사본부 민조단은 현재 ‘국방부조사본부령’에 의거해 ‘민원이 제기된 군 관련 사망사고’만 조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유가족 민원이 없는 사망사고의 경우 미순직자의 명예를 되찾아 줄 방법이 없다. 더욱이 6·25전쟁 직전·후 사망자가 대거 발생해 유가족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민원 제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탁 변호사는 “직권조사를 하면 전수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며 “그 자체가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원회 역시 활동 중 직권조사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 더 많은 성과를 냈다고 근거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그는 “국회에서도 모두 동의할 만한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탁 변호사는 국방부에 직권조사권이 주어지면 새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하도록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전문성을 향상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도 함께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군이 함께 인적 구성이 되는 조사기구가 좋다”며 “군인의 생리는 군인이 더 잘 알지만, 유가족을 대하는 법이나 노하우 면에서는 민간 전문가가 뛰어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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