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요설을 둘러싼 동상이몽

입력 2025. 03. 26   17:04
업데이트 2025. 03. 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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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지난 2월 26일 조현동 주미한국대사는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를 다룸에 있어 앞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십 년간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주문해 온 전문가들에게는 ‘뒤늦었지만 당연하고 반가운 결정’이었다. 그동안 핵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기만적 표현이 숱한 혼란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1991년 소련연방 해체와 함께 남북 대화와 북·미 핵대화가 시작되던 무렵 한미 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 포기를 설득하고자 써 온 표현이다. 즉 미 전술핵이 철수됐으므로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핵 없는 한반도가 된다는 의미였다.

이와 달리 북한이 김일성 시대부터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온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미 전술핵 철수는 물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모든 영향력까지 배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북한은 전술핵이 철수하고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한 이후에도 “우리의 핵 포기를 거론하기 전 주한미군, 한미 연합훈련, 미 전략자산의 전개 등 미국의 영향력을 먼저 일소하라”는 의미로 이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일컫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표현을 선호했지만, 평양이 거부감을 보임에 따라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라고 자주 표현했다. 한국에선 ‘한반도 비핵화’로, 북한에서는 ‘조선반도 비핵화’로 번역됐지만, 한미와 북한이 믿는 뜻은 사뭇 다른 동상이몽은 지속됐다.

2018년 북한의 평화 공세로 남북 대화가 시작됐을 때 평양을 다녀온 방북단은 “북한 김정은도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더라”라며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권했다. 당연히 북에서 들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전언했을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미가 이야기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미국은 곧 이 말장난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미국은 2018~2019년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 포기가 아닌 ‘조금 주고 모두 받기’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회담은 결렬됐다.

그 직후인 2019년 4월 한미 정상이 만났는데, 청와대는 발표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논의했다고 했지만 백악관 발표문은 ‘FFVD of DPRK’로 표기했다.

이렇듯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마치 핵 포기를 검토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지만 북한 내부에선 핵무력 증강을 정당화하는 구호이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혼선과 착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용어전술로 외부 세계를 기만하면서 안으로는 핵무력 고도화를 다그치는 북한의 셈법을 세상에 바로 알리고 한미 간 소통을 돕는 데 필요한 조치였다.

최근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한 것에 북 외무성은 3월 17일 자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그 누구의 비핵화를 입에 올리기 전에 G7 국가들부터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포기를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게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요설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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