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서해수호의 날
지켜낸 영웅들, 기억될 이름들
천안함 피격사건은 우리 영해에서 경계작전 중인 해군 함정이 북한군의 기습적인 피격을 받은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한 사태였다. 이후 15년이 지난 오늘,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전우들의 희생·헌신, 그리고 교훈을 되짚어본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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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북 잠수정 어뢰 공격에 두 동강
승조원 104명 중 46명 전사 58명 구조돼
천안함 피격사건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22분께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2함대 초계함인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며,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사건이다.
당시 천안함은 강한 폭발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절단돼 침몰했다. 피격 직후 2함대사령관은 서풍-Ⅰ을 발령했다. 서북 해역 및 도서에서 적 도발 시 발령하는 경계태세 1급의 상황조치다.
상황을 전파받은 해군 고속정과 해경 함정이 현장에 도착해 인명구조활동을 펼쳐 약 2시간 뒤인 오후 11시13분께 승조원 58명이 구조됐다. 함체 탐색과 생존자 구출을 위한 탐색구조작전도 벌어졌다.
며칠간 계속된 작전에서 추가 구조 인원은 없었다. 되레 3월 30일 함수 구역에서 수중탐색하던 수중폭파팀(UDT) 한주호 준위가 실신해 후송됐지만, 치료 중 사망하면서 추가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픔이 발생했다. 이후 4월 3일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작전 중단을 눈물로 요청했다. ‘생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마음에서 내린 어려운 결단이었다. 유가족의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은 국민에게 감동과 슬픔을 줬다.
이에 따라 탐색구조작전은 함체인양작전으로 전환됐다. 4월 15일 함미가, 25일에는 함수가 인양돼 2함대로 이송됐다. 4월 26일부터 5월 20일까지는 잔해물 탐색·인양작전이 2단계로 구분해 전개됐다. 함체로부터 분리된 잔해물과 실종자 시신을 추가로 탐색·수습하면서 천안함 침몰원인 규명을 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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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영결식…국민적 애도 분위기 확산
전국 340개 합동분향소에 70만 추모행렬
정부는 4월 25~29일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영결식 당일인 29일은 국가애도일로 지정했다. 국가애도기간 민·관·군을 통합한 340개소의 합동분향소를 운영하고, 지방자치단체 자율의 시민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 국민 70만여 명이 아픔을 함께했다.
해군은 사망구분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천안함 실종자 모두가 4월 3일 토요일 오후 6시7분 전사했다고 규정했다. 천안함이 전투지역에 준하는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과 침몰원인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영했다. 전사자 호칭은 ‘천안함46용사’로 명명했다.
그보다 앞서 4월 3일 열린 고(故) 한 준위의 영결식은 해군장으로 엄수됐고 한 준위는 ‘전사’로 분류됐으며,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정부, 국내외 전문가로 합동조사단 꾸려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 잇달아 북 규탄
우리 정부는 과학적 증거와 국제 공조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민·군 합동조사단을 편성해 사건조사에 착수했다. 해군은 4월 26일부터 원인 규명을 위한 함체 잔해물 탐색 및 인양작전을 펼쳐 5월 15일 잔해물 수거작전 중 결정적인 증거물인 어뢰 추진동력장치를 수거했다.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이를 바탕으로 천안함이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됐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르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됐다. 폭발 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사용 중인 고성능폭약 250㎏ 규모의 CHT-02D 어뢰였다. 북한군의 잠수함 능력과 폭발지역에서 수거한 물품 등이 북한제 어뢰와 합치된다는 다국적 연합정보분석팀의 정보분석과도 일치된 결과였다.
정부는 5월 20일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오자 대통령 명의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고 외교·통일·국방부 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남북교류협력 중단을 골자로 하는 대북조치도 발표했다. 아울러 정부는 30여 차례의 정상외교를 비롯한 미·일·중·러 4개국 외교로 국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태’를 회부해 7월 9일 안보리의 규탄설명을 이끌었다. 주요8개국(G8) 정상선언문 채택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담 의장성명 채택도 이어졌다.
우리 정부와 군은 천안함 피격사건을 통해 얻은 국가안보상 교훈을 토대로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을 점검·강화하는 한편, 국민적 지혜와 제반 역량을 모아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국가안보태세를 굳건히 하는 전기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천안함 46용사와 한주호 준위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서해를 수호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의지를 지키는 것 아닐까.
도움=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해군 서해수호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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