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씨름과 스모

입력 2025. 03. 07   16:59
업데이트 2025. 03. 0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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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21년 전 일이다. 오락실 인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에 등장하는 캐릭터 혼다, 영화 ‘으랏차차 스모부’, 해외 토픽 등에서 접하던 일본식 씨름 스모를 직관할 기회가 생겼다.

국내에서 스모 대회가 열린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념해 한·일 공동 미래 프로젝트 1호로 마련된 행사였다. 일본의 국기(國技)인 스모가 한국에서 선보인 건 공식적으론 광복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모 대회가 일본이 아닌 아시아에서 열린 것도 1973년 중국 베이징 대회 이후 처음이었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이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하루 행사가 이어졌다. 둘째 날 경기를 취재차 관람했다. 기술이 다양한 우리 씨름보다 스모는 단출해 보였다. 전반적으로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승부는 정말 눈 깜짝할 새 가려졌다. 경기 자체보다 엄숙한 사전 의식이 더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요코즈나로 인기를 끌던 아사쇼류가 한국 대회에서 우승했다.

스모의 최상위 등급인 요코즈나는 우리 씨름으로 치면 천하장사다. 씨름선수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스모 1부 무대에서 활약했던 김성택도 이 대회에 출전해 선전하며 박수를 받았다. 6000여 명의 관중이 씨름의 성지인 장충체육관을 가득 채울 정도로 스모를 향한 관심이 뜨거웠다.

1980년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씨름이 서서히 인기를 잃어 가던 터라 휘황찬란해 보이는 스모에 슬그머니 샘이 났다. 아사쇼류는 몽골 출신이었는데, 아사쇼류 이전에도 미국 하와이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즈나에 등극한 아케보노가 인기를 끌었었다. 스모는 국제화에도 성공한 듯해 마냥 부러웠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현장 취재할 당시 스모의 성지로 불리는 료코쿠 코쿠기칸(國技館)을 방문했다. 올림픽 복싱경기장으로 활용된 코쿠기칸의 천장에는 스모 스타들의 대형 걸개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올림픽 때 스모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랜 터전이던 장충체육관을 떠나 지역 모래판을 전전하는 우리 씨름의 상황과 겹쳐 입맛이 썼다.

그랬던 스모가 요즘 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일본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4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서는 선수 규모가 198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프로야구와 함께 최고 인기 스포츠로 군림하던 1990년대 중반과 견주면 선수층이 60% 규모로 줄었단다.

지난해 일본 중학교의 스모부 설치율은 1.7%에 불과하고 2027년에는 전국중학교체육대회 종목에서 스모가 제외될 예정이라고 한다. 프로 스포츠가 다양해져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보수적인 위계문화가 스모의 인기를 끌어내리는 주요 원인이란 분석이 곁들여졌다. 스모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그러고 보니 바닥을 쳤던 우리 씨름은 조금씩 체질 개선이 이뤄지며 인기를 되찾는 상황이다. 노범수·허선행·차민수·김무호·박민교·김민재·최성민 등 걸출한 20대 초반 장사들이 ‘제2의 이만기와 강호동’을 꿈꾸며 속속 등장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팬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올 1월 열린 대한씨름협회장 선거에서 ‘모래판 신사’ 이준희 회장이 당선됐다. 1980년대 ‘황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 ‘인간 기중기’ 이봉걸 대전시씨름협회 고문과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며 씨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다. 이른바 민속씨름 세대로 모래판 수장을 맡은 건 이 회장이 처음이다. 씨름의 더 큰 도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기왕이면 우리 씨름이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장충체육관에서 다시 신명 나는 무대를 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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