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44. 2023년 공군 레드플래그 알래스카<2>
출입증 발급 기준 못 맞춰 여권 대체
정문 드나들 때마다 수기 확인 불편
숙소서 걸어서 30분 거리 호수 탐방
무스·여우 출몰…다람쥐는 자주 봐
6월에도 싸늘…껴입었지만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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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슨 공군기지에 도착해 처음 한 일은 기지 출입증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분증을 보여 주고 확인한 뒤 사진을 찍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 출입증이 나온다. 완성까지 5분이면 되는 듯하다.
물 흐르듯 잘 진행되던 게 내 앞에서 멈췄다. 이유는 단순했다. 미리 본사에서 비취 인가(비밀취급 인가)를 받아 제출했는데, 이게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인 신분이 아니어서 그런지 담당자는 계속 발급 불가라는 이야기만 했다. 통역까지 나서 해결해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더 골치가 아팠다. 걱정도 태산처럼 늘었다. 출입이 불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관용)여권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기지는 드나들 수 있다니 한시름 놨다.
일행의 출입증 발부가 끝난 뒤 숙소인 웨지우드리조트로 이동했다. 아일슨 공군기지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원래는 기지 안 숙소에 머무른다. 하지만 다행히(?) 숙소가 공사 중이어서 기지 외부에서 찾아야 했다. 아무래도 기지 내에 있으면 갈 곳도 제한되고, 행동에도 제약을 받을 텐데. 공사 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반갑게 느껴지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앞서 공군은 이번 훈련기간 아일슨 공군기지 숙소가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지난해 12월 웨지우드리조트를 예약했다. 알래스카는 이 시기가 관광으로 분주한 때라고 하니 평상시보다 숙박비를 적잖게 절약한 셈이다.
공보팀과 함께한 나는 4인실로 배정받았다. 침대 1개인 방 하나와 2개인 방, 침대로 변신할 수 있는 소파가 있는 거실로 구성됐다. 방은 날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이용하자고 이야기했는데, 예우 차원인지 침대 1개인 방을 사용하란다. 사실 이들과 나이 차가 있기는 하다. 띠동갑.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에 이르니. 고맙게 양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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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정리한 뒤 잠시 숙소 인근 탐방에 나섰다. 웨지우드리조트는 알래스카 제2의 도시인 페어뱅크스 시내와는 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에 있다. 걸으면 약 30분.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인근에는 호수도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0여 분이면 된다. 다만 모기의 천국이라 호숫가를 산책할 때는 외부에 피부가 노출하지 않도록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또 이 지역은 야생동물보호구역이어서 야생동물을 목격하는 일도 종종 있다. 안내판에 무스(Moose·유럽에선 ‘엘크’라고 부른다)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니 혹시 볼 수 있으려나 기대도 된다. 무스는 몸길이 2.5~3m, 어깨높이 1.4~1.9m에 이르는 현존하는 사슴 중 제일 큰 종이다. 여우도 가끔 출몰한다고 한다. 제일 많이 본 동물은 다람쥐였다. 침실 창문 너머로도 가끔 보인다. 사람들을 많이 접해 봐서인지 쉽게 곁을 내준다. 물론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간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아일슨 공군기지로 향했다. 한국시간으로 6월 1일 새벽 서산기지에서 출발, 후발대로 날아올 KF-16 전투기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전투기들은 한국과 미국 공중급유기 지원을 받으며 태평양을 가로질러 장장 6800㎞를 논스톱으로 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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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정문을 통과하려는데, 역시나 제동이 걸린다. 다른 사람들은 얼굴과 출입증만 대조하고 확인이 끝나지만, 내 여권은 수기로 적힌 명부를 일일이 비교하는 절차를 한 번 더 거친다. 우리 같으면 컴퓨터 단말기로 바로 확인이 가능할 텐데, 답답하다. 지식정보화 시대이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로봇이 결합한 스마트 시대에 수기 확인이라니!
그 후에도 기지를 숱하게 드나들었다. 담당 병사에 따라 통과시간은 각각 달랐다. 어떤 병사는 1~2분 이내에 확인하고 들여보냈다. 어떤 병사는 몇 페이지짜리 명부를 마지막까지 둘러보다가 끝내 찾지 못해 다른 선임 병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대기시간은 쭉쭉 늘어났다. 먼저 온 우리 일행은 대기하고, 뒤에 온 다른 이들이 앞서 통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역시 모든 일은 사람 하기 나름이다.
활주로 방향으로 가는데, 날씨가 차갑다. 바람을 막아 줄 건물이 없어 더욱 그런 듯했다. 이곳 6월의 기온은 영상 9도에서 22도 사이. 반소매 착용도 가능하다는데, 아직은 싸늘하다. 준비해 간 긴소매 상의와 점퍼까지 몇 벌을 껴입었지만, 틈을 파고드는 추위를 이겨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언제쯤 오려나. 활주로에서 다들 하늘만 쳐다본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갑자기 눈 좋은 누군가가 환성을 질렀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멀리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순식간에 크기를 키운 전투기가 기지를 크게 선회했다. 일행도 태극기를 휘두르고 껑충껑충 뛰며 환영의 표시를 했다. 어느새 전투기 후방석에서도 태극기를 펼치며 답례했다.
전투기 편대의 바퀴가 활주로에 완전히 멈추고 조종사들이 내리자 여기저기 환성과 함께 포옹이 이어졌다. 드디어 선발대, 본대, 후발대가 합체했다. 모두 ‘하나’가 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원래 계획했던 6대가 아닌 4대만 도착했다는 것이다. 1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벗어나기 전 공중급유에서 급유구가 열리지 않아 기지로 회항했다. 다른 1대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함께 복귀했다.
이들 전투기는 다시 서산기지를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아일슨 공군기지에 무사히 발을 디뎠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예정된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FA) 훈련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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