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살인자로 고발했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 고소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우리에게 친숙한, 최초의 성문법 ‘함무라비법전’ 제1조 1항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무고죄를 국가와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죄로 바라봤다. 무고죄와 관련된 조항이 1조에서 5조까지 법전의 서두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빌로니아에서 무고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무고죄를 근절하기 위해 바빌로니아가 택한 대책은 무고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무고를 당한 자가 받게 될 처벌과 동일하게 처벌했다. 무고를 한 죄가 사형에 해당하면 무고자도 사형에 처했고, 재산에 관한 죄(벌금형 등)라면 그에 상응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조선시대에도 무고죄의 처벌은 무고를 당한 자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하냐에 따라 달라졌다. 무고죄를 범한 자에게는 사형·유배형·장형 등의 처벌을 했다. 무고를 당한 자의 신분, 그 죄로 인해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거나 가족까지 피해를 봤는지 등까지 고려해 처벌했다.
고대 바빌로니아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형법상 무고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가능하지만, 대법원의 양형 기준은 그보다 현저히 낮고 상습범이 아닌 이상 3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3년 이하의 징역형인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데, 무고죄의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친다. 이례적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엽기적인 무고사건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무고죄의 입증은 매우 어려우므로 무고를 당한 자가 무죄여도 무고자의 무고죄 역시 범죄의 고의를 증명하지 못해 불기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 건수는 2017년 3690건에서 2022년 4976건으로 5년간 35%가량 증가했다. 검찰에 접수되는 사건을 포함하면 매년 1만여 건의 무고사건이 발생한다. 이 중 기소되는 사건은 10%를 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 보는 실제 무고죄 기소율은 3% 안팎에 불과하다.
개인의 피해도 크지만 무고가 증가하면서 생기는 더 큰 문제는 사회에 가해지는 위해와 분열이다.
역모나 내란, 비리 등을 고발했던 과거의 무고가 주로 정치적으로 악용돼 사회를 분열시켰다면 최근 무고사건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성범죄 고소사건이어서 성별 간 분열과 이유 없는 적개심을 부추긴다.
일부 여성 인터넷 커뮤니티엔 ‘성범죄 고소 후 절대 무고 안 당하는 가이드’ ‘준강간 고소 요령’ ‘강제추행 고소 후 합의금 수천만 원 성공사례’라는 제목의 글들이 돌아다니는 지경이고, 반대로 남성 사이트에는 ‘꽃뱀 대처하는 요령’ ‘꽃뱀 무고죄’ ‘공갈죄 역고소하는 법’ 등의 글들을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가 형사사건 변호를 해 온 10여 년간 남녀의 간격은 믿지 못할 만큼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남성과 여성들에게 이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이 돼 망설였다. 그러나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자는 논리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무고죄를 엄하게 처벌하자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고죄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누군가를 살인자로 고발했으나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 고소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3800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왜 무고죄를 법전의 최상단에 규정해 엄벌에 처했는지, 무고를 한 자에게 자신이 무고한 죄와 동일한 형벌을 받게 했는지, 또 그것을 증명하도록 하는 책임을 지웠는지 생각해 보면서 새삼 그들의 지혜에 감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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