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물길따라 사람도… 프랑스 남부로 흘러든 로마문명

입력 2025. 03. 05   15:01
업데이트 2025. 03. 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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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퐁뒤가르 수도교 -
고대 로마 군사도시의 핵심 인프라

1200년 이어진 제국의 핵심 원동력

실용적이고 견고한 문명에 담겨 있어
카이사르, 알프스 넘어 영·프까지…
교통 요지마다 로마군단 주둔시켜
발달된 수로 네트워크 통해 물 공급
현존 최고 로마 수도교 유산 남겨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퐁뒤가르 수도교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퐁뒤가르 수도교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원전 750년경 이탈리아반도 중앙의 티베르 강가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이후 발전을 거듭해 기원전 50년경에는 지중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공화정 시기(BC 510~BC 27)를 거쳐 제정(BC 27~AD 476)으로 이어지면서 통치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서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대를 구가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전한 기존 문화에 다른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융합해 수준 높은 실용적 문화를 창출, 이를 유럽에 전달함으로써 오늘날 서양문명이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놓았다. 그 덕분에 로마는 476년 멸망할 때까지 약 1200년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었다. 역사상 어떠한 국가나 제국도 이처럼 장기간 존속한 경우는 없었다.

로마제국이 장구한 세월 동안 유지될 수 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직접적으로는 최강의 전투력 발휘를 가능케 한 앞선 군사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로마군단으로 대변되는 로마군의 발전은 병사의 무장에서부터 정교한 전투대형, 그리고 효율적인 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전 범위에 걸쳐 이뤄졌다.

이런 하드웨어와 더불어 로마제국을 번영으로 이끈 진정한 원동력은 체계적인 법률 및 정교한 통치제도,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유적에서 엿볼 수 있는 로마 문명의 실용성에 담겨 있었다. 2000년의 세월 동안 쌓여온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오늘날에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당기고 있는 콜로세움, 수도교, 군사도로 등에서 로마 문명의 실용성과 견고함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도시국가 카르타고와 지중해의 해상권을 놓고 무려 100년 동안 벌인 포에니 전쟁(BC 264~BC 146)에서 승리한 후 로마는 그리스 반도,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로 영토를 확장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에는 알프스를 넘어 오늘날 프랑스와 잉글랜드 지역까지 빠르게 넓혔다. 이어 확보한 지역 여기저기 교통 요지에 로마군단을 주둔시켜 군사 및 통치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다.

얼마 후 이런 군사기지 주변으로 상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번듯한 군사도시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이때 도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다른 무엇보다 원활한 물 공급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물만큼 인간 생명과 삶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물 공급 문제를 해결했을까? 바로 발달한 로마의 수로(水路·Aqueduct) 네트워크를 통해서였다. 이러한 점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사적(史蹟)이 바로 1985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는 퐁뒤가르(Pont du Gard) 수도교다. 이는 프랑스 남부 가르 지방에 있는 현존 최고 수준의 고대 로마시대 수도교 유적이다.

 

프랑스 남부 도시 님(Nimes)의 중앙에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유적이 보인다. 출처=위키백과
프랑스 남부 도시 님(Nimes)의 중앙에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유적이 보인다. 출처=위키백과



퐁뒤가르 수도교는 프랑스 남부에 건설된 군사도시로 빠르게 군사적·상업적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던 ‘님(Nimes)’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수로망의 일부였다. 로마제국은 수로를 건설해 원거리 고지에 설치한 수원지로부터 도시 님에 식수와 공중목욕탕 등에서 필요로 한 물을 공급했다. 거대한 구조물인 수로 건설은 로마의 대표적인 공학 기술 중 하나로, 광대한 로마제국 영토 내에서 거점 도시화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소였다.

그렇다면 로마는 왜, 그리고 언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정복하고 그곳에 군사도시를 세웠을까? 카이사르의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땅의 로마시대 명칭) 남부지방 원정은 기원전 58년부터 50년까지 이어진 갈리아 전쟁 초입에 단행된 군사 작전이었다. 당시 로마의 영향력 밖에 있던 갈리아 남부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반도로 진입하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다. 이곳은 또한 로마 본토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무역로이기도 했다.

군사도시 건설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던 프로방스 ‘님’에 기원전 50년경 도시 탄생의 기초가 놓였다. 처음에는 군사기지 형태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곧 인구가 5만~6만 명에 달하는 번잡한 로마식 도시로 발전했다. 인구가 늘면서 주거지는 물론 신전, 원형극장, 공중목욕탕 등 공공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당연히 대량의 물 공급이 절실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퐁뒤가르 수도교는 기원전 50년경에 건설이 시작돼 약 10년의 공사 끝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수도교는 북쪽 산지에 있는 수원지에서 50㎞가량 떨어져 있는 도시 ‘님’으로 물을 보내기 위한 수로망의 일부로 세워졌다. 수로는 자연적인 경사를 따라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는데, 수로가 연결되는 중간 지점에서 가르강을 만나게 되자 그곳에 장대한 수도교를 건설했다.

 

퐁뒤가르 수도교의 일부인 2000년 된 다리 위로 차가 다니고 있다. 필자 제공
퐁뒤가르 수도교의 일부인 2000년 된 다리 위로 차가 다니고 있다. 필자 제공



퐁뒤가르 수도교는 총 3개 층(맨 위층이 수로)으로 구성됐으며, 각 층은 로마건축의 핵심적 특징인 아치형 구조로 돼 있다. 이는 건축물의 하중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기능을 발휘해 구조물의 안정성을 높여줬다. 수도교의 총 높이는 거의 50m에 달할 정도였고, 길이도 275m로 장중함을 더했다. 완공됐을 당시 하루에 흘려보내는 물의 양만 하더라도 4만㎥에 근접할 정도였다.

고대 로마의 수도교 건설은 고대 토목기술 중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와 군사기지, 농업 지역 등에 생명과도 같은 물을 공급하는 기본 인프라였기 때문이다. 수도교 건설 기술은 당시 로마의 엔지니어들이 수리학, 건축학, 토목 공학 등을 통합해 개발한 혁신적인 방법들로 이뤄졌다.

우선, 경사도 측정과 수압 조절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수도교는 지면에 설치한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했기에 물이 고여 있지 않고 원활하게 흐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울기가 필요했다. 로마인들은 정교한 수평 측량도구(레벨·캘리푸스 등)를 사용해 매우 정확하게 수로 경사도를 계산해 냄으로써 물이 일정한 속도로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이때 경사도와 더불어 물이 지나가는 수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압력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로마의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이 흐르는 경로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압력을 분산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했다. 수로 내부의 물길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로 깔았으며, 수로의 바닥은 평평하게 다듬어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흐르는 과정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수로 내부를 백색 석회로 칠하거나 내구성이 뛰어난 로마산(産) 콘크리트를 바르는 등 일종의 방수 처리 작업으로 마무리했다.

오늘날 퐁뒤가르 수도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으며, 고대 로마인들이 지녔던 공학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자원을 총동원해 건설됐기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석공 지망생의 필수 방문 코스이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쉽게도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 웅장한 외관과 역사적 중요성에 매료돼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매년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퐁뒤가르 수도교를 방문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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