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잼’이 없는 세상 싫어 ‘젬’처럼 빛나볼게

입력 2025. 03. 03   08:22
업데이트 2025. 03. 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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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 키키(KiiiKiii)

다 아는 생일축하곡에 붙인 ‘데뷔 송’
첫 EP ‘언컷 젬’ 재미+보석 언어유희
기발하지만 익숙하고 Y2K 감성 충만
‘아이 두 미’ 통해 “나만 존재” 메시지
노래·그룹보다 노래 포장 방식에 ‘힘’
최근 K팝에 선명한 문법 그대로 따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



“데뷔 축하합니다. 데뷔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키키. 데뷔 축하합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KiiiKiii)의 ‘데뷔 송’이다. 설마 하고 머릿속에 떠올린 그 멜로디가 맞다. 생일 축하 노래다. 놀랍게도 이 노래는 2016년 전까지 ‘해피 버스데이 투 유’라는 제목으로 레이블이 저작권을 독점하여 매년 2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창작의 나래를 펼쳐봤을 법도 한데 이제야 창작물이 나온 까닭이다.

‘데뷔 송’의 기발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후렴으로 향하는 길은 플루트 연주로 꾸며놓은 힙합 트랩 비트다. ‘엄마 나 데뷔했어!’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는 아이들, 어딘지 특정할 수 없는 해외 혹은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자유로운 일상, 기획사 오디션의 셀프 패러디 등 영상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숏폼 플랫폼 피드처럼 휙휙 지나간다. 

해외 무대에 더 무게를 두는 요즘 K팝에서 많이 덜해졌지만, 여전히 K팝 ‘입덕’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유튜브 ‘교차편집’ 영상까지 재치있게 응용하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알차게 욱여넣은 화려한 폰트와 저화질 영상은 Y2K 리바이벌부터 2000년대 중후반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초창기 인터넷의 감성과 저열한 퀄리티의 온라인 콘텐츠를 과소비하고 몰두하는 신조어 ‘브레인 롯(Brain Rot)’의 디지털 풍화를 미감으로 삼는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

 

 

키키의 기획은 시작부터 번뜩였다. 그룹의 시작을 알린 인스타그램 피드부터 심상치 않다. 중년 남성의 모히칸 헤어스타일에 커다랗게 팀의 이름을 새겨넣는 대담함부터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오브제, 케이크와 색연필, 형형색색의 보석이 팝핑캔디처럼 팡팡 튀어 오른다.

3월 24일 발표하는 첫 EP의 제목이 ‘언컷 젬(Uncut Gem)’,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라는 데서 착안한 디지털 미술관이다.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보석을 뜻하는 영어단어 ‘젬’과 재미를 줄인 ‘잼’의 언어유희를 활용했다. 소셜미디어 계정 하나 운영하기도 벅찬 요즘 시대에 개설한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웃음이 터진다.

무료 웹사이트 제작 서비스에서 제작한 영미권 자영업 사이트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수제 잼 공장’의 소개글이 있다. ‘언컷 젬’에 수록된 노래 제목이 붙어있는 잼 병을 클릭하면 곡마다 다른 테마로 구성된 각 페이지가 키키의 다양한 매력을 소개한다. ‘데뷔 송’에는 멤버별로 잘 다듬어진 보석 펜던트에 콘셉트 포토를 숨겼다. ‘빈 댓 걸(Been That Girl)’과 ‘데어 데이 고(There They Go)’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게임의 추억을 환기한다. ‘노 젬 인생은 지겨워(No Gem 인생 is Boring)’이라는 당찬 포부와 함께 ‘대박적 데뷔’라는 선언의 근거가 있다. 재미 하나는 확실하다.

물론 이 팀이 말초적인 흥미만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련의 예고 없이 뮤직비디오만 공개한 타이틀곡 ‘아이 두 미(I DO ME)’에서 키키는 21세기 인터넷 세계에서 벗어난 디지털 디톡스를 들려준다. 마치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잼 공장이 위치한 시골 마을을 거니는 듯, 인터넷 지도 위성 화면으로 꾸며놓은 화면에는 뉴질랜드 전체를 현지 촬영한 대자연 한가운데 동물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키키의 자유로운 모습이 담겨 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의 앨범 커버.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신인 5인조 걸그룹 ‘키키’의 앨범 커버.



‘손끝엔 나비, 그게 나의 살아있는 반지’ ‘콩 무당벌레가 내 피어싱’이라는 노랫말과 함께 도시를 벗어난 소녀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나답게 더 잘하겠다는 견고한 자아를 다짐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 특별한 여행의 의미를 풍성한 뮤직비디오와 콘셉트로 풀어내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최근 K팝에 선명해진 문법이 있다. 기획사의 이름보다 분명한 방향을 가진 기획자의 존재감이 커졌다. 한국 청소년의 문화 대신 과거 청소년 시기 동경했던 서구권의 문화와 오늘날 사이버 세상에서 넘쳐흐르는 유행을 핵심 재료로 삼는다. 음악 이상으로 음악을 처음 소개하는 방식이 중요해졌다. 재치 있는 예고 콘텐츠와 앨범 디자인 및 구성은 필수다.

뚜렷하다 못해 직설적인 메시지의 곡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존재한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한 결과가 키키의 기획사 선배 아이브의 ‘일레븐’과 2022년 뉴진스의 충격적인 데뷔곡 ‘어텐션’이었다. 아이브의 ‘감히’ 서사가 주체적인 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뉴진스는 미감의 기술적 모범 사례를 세웠다. 비단 두 그룹뿐 아니라 같은 시기 동시다발적으로 데뷔한 수많은 걸그룹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마냥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노래와 그룹보다는 노래를 포장하는 방식에 더욱 힘을 쏟는다. 기획자와 기획사의 이름이 더 불리는 만큼 기획을 수행하는 아이돌 멤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당장 이 글에서 키키의 멤버를 소개하지 않는 이유다. 가끔 요즘 K팝은 인공지능 창작물처럼 들릴 때가 있다. 풀어야 할 숙제다.

키키의 세상에는 Y2K 리바이벌과 디지털 노스탤지어, 스마트폰과 물아일체를 이루는 세기말의 어른들과 오늘날 아이들이 공존한다. 분명 낯설지만, 익숙한 부분이 많다. K팝 아이돌 그룹의 흥망성쇠를 수없이 지켜본 이들에겐 신인 그룹의 데뷔 예고, 연습생들의 준비 과정, 첫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기획사 관계자들이 준비한 케이크를 들고 데뷔를 자축하는 일련의 모습을 ‘데뷔 송’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 두 미’는 여타 수식 필요 없이 아이브의 후배 그룹임을 선언하는 곡이다.

앨범이 나오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았지만, 홈페이지에서 예고하는 노래의 주제나 표현방식 역시 완전히 새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일련의 경험을 콘텐츠로 다듬어 최초로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과감한 결정이다. 끝없는 처음과 최초의 발굴, 무한히 대체되는 젊음. 키키는 시작부터 K팝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깨닫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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