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 ‘보물섬’으로 돌아온 박형식
막장도 진중함으로 중화… 찾았다, 진짜 보물
야망 향해 직진하는 날 선 눈빛 완전무장
의사로, 왕세자로 쌓았던 청춘발랄 틀 깨고
아이돌서 10년 넘은 베테랑 연기자로 성장
청춘은 밝고 경쾌하다. 그래서 보는 이들을 풋풋한 그 시절로 소환하는 힘이 있다. 박형식은 그런 이미지를 타고난 배우다. 설레게 만들고, 한없이 밝고 맑으며, 가벼웠던 청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배우. 이런 이미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게감을 요구하는 역할로 영역을 넓혀야 하는 배우에게는 정반대로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 발랄함의 가벼움을 넘어 인생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그 그늘을 매력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누아르 장르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돌아와 분노를 뿜어내는 처절한 복수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형식이 최근 출연한 드라마 ‘보물섬’은 보물 같은 경험을 그에게 안긴다. 이 작품으로 그간 밝고 경쾌하게만 보였던 청춘의 아이콘이 사뭇 무겁고 깊이감까지 갖춘 ‘남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됐으니 말이다.
‘보물섬’에서 박형식이 맡은 서동주라는 인물은 등장부터 선한 청춘의 이미지와 다른 다크한 어른의 면모를 풍긴다. 대산그룹 차강천 회장(우현 분)이 총애하는 비서로, 회사에 불리한 증언이 청문회에서 나오자 대뜸 돈다발을 들고 의원을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는 인물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금품을 제공하기도 하고, 때론 주먹질도 하며, 몰래카메라로 찍은 영상으로 협박하기도 하는 그런 인물. 그간 박형식이 해 온 풋풋한 청춘과는 등장부터가 다르다.
우리에게 박형식의 이미지는 그의 전작이었던 ‘닥터슬럼프’에서의 여정우 역할에 가깝다. 그는 늘 밝았고, 심지어 모든 걸 잃고 밑바닥으로 추락한 뒤에도 여전히 웃었다. 잘나가던 성형외과 의사이자 인플루언서였던 여정우는 한순간의 누명으로 모든 걸 잃는다. 그럼에도 이 청춘은 자신의 만만찮은 상처에도 선배 의사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우울증을 앓고 쫓겨나게 된 남하늘(박신혜 분)을 위로해 준다.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오다가 그 지경에 이른 남하늘이 “잘못 산 것 같다”고 말할 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얘기해 준다. 박형식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는 남하늘은 물론 자신까지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여정우라는 캐릭터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박형식이라는 청춘의 이미지가 보여 주는 이러한 ‘회복력’은 그가 사극에 도전했던 ‘청춘월담’에서도 힘을 발휘한 바 있다. ‘청춘월담’은 저마다 저주와 누명을 뒤집어쓴 청춘들이 그들을 가둬 놨던 담을 뛰어넘는 이야기다. 이환(박형식 분)은 형을 죽이고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는 누명을 쓴 채 혹독한 저주를 받은 인물이다. 민재이(전소니 분)는 사랑하는 부모와 오라버니를 독살한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채 도망자가 된 인물이다. 어두운 곳에 있어도 오히려 빛나는 밝은 이미지를 드러내는 박형식인지라 그는 속박된 틀에서 벗어나 훨훨 담을 넘어가는 ‘청춘월담’의 서사와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박형식의 밝은 이미지는 심지어 좀비 장르에서도 설렘을 준다. 좀비가 창궐하는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도 한효주와 달달한 멜로 구도를 그렸던 ‘해피니스’에서의 박형식이 그렇다. 어찌 보면 좀비가 창궐하는 아포칼립스의 암울한 상황과 발랄함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오히려 ‘해피니스’는 이런 팬데믹 분위기와 상반된 활기찬 극의 분위기가 특징인 작품이다.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이 드라마는 좀비 장르로 팬데믹 상황을 은유하긴 했지만, 너무 어둡지 않은 전망을 담으려 했다. 그래서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어둡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하려 했고, 멜로 같은 달달한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 밝은 미소가 더 어울리는 박형식과 한효주가 작품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다.
고정된 밝은 이미지는 배우의 성장에 족쇄가 되기도 한다. 박형식은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로 시작했지만, 2012년부터 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10여 년간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그가 계속 청춘의 아이콘으로만 머물러서는 여러모로 한계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다. 그가 ‘보물섬’ 같은 욕망과 좌절, 분노와 복수가 이어지는 누아르에 가까운 작품으로 돌아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이미지 변신이니 말이다.
실제로 예고편이 나온 뒤 대중은 박형식의 다른 면모에 적잖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훨씬 굵어진 선이 강조되는 이미지에 강렬한 눈빛과 다크해진 모습이 그렇다. 첫 등장은 사랑에 진심인 순정남으로 분한다. 사랑을 위해 야망까지 접고 여은남(홍화연 분)이라는 여인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순정남의 면모는 첫 회 만에 깨진다. 여은남이 차강천 회장의 외손녀였고, 비선 실세로 최강 빌런인 염장선(허준호 분)의 조카와 정략결혼을 하면서다. 서동주는 이로써 사랑에 배신당하고, 나아가 대산그룹에서 성공하려던 야망 또한 저지당할 위기를 맞는다. 2조 원의 비자금을 만든 후 버림당할 위기에 처한 서동주의 선택은 우리 모두가 기대하듯이 처절한 복수다.
사실 ‘보물섬’은 돈과 권력의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보물’을 찾아가는 이야기지만, 그 구성이나 소재는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이러한 막장요소가 박형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진중함과 만나 중화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지금껏 신뢰를 주던 박형식이기에 믿고 보게 되는 것이다. 밝은 이미지로만 채워져 있던 박형식에게도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간 청춘의 아이콘으로만 그려지며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졌던 깊이감의 부여랄까. 아마도 박형식이 이 작품에서 얻게 된 진짜 보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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