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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더 화려하게 핀 위기의 주부들

입력 2025. 02. 25   15:00
업데이트 2025. 02. 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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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꽃의 비밀’ 

거짓말에 더 큰 거짓말…웃음에 더 큰 웃음
보험금 위해 뭉친 4명의 주부
요절복통 거짓말 대환장 파티
10주년 맞은 ‘장진 코미디’ 진수
황정민·안소희·이엘·김슬기 등
호화스러운 캐스팅도 볼거리

 

연극 ‘꽃의 비밀’ 공연 장면.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연극 ‘꽃의 비밀’ 공연 장면.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연극 ‘꽃의 비밀’은 장진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코미디물이다. 작가·연출가·영화감독·사업가라는 다수의 명함을 가진 장진은 자신이 쓴 흥행 연극작품을 영화로 제작, 이 분야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표본 같은 존재기도 하다. ‘웰컴 투 동막골’ ‘박수 칠 때 떠나라’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SNL코리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초기 세팅과 성공을 이끌었을 만큼 코미디물에 정통한 인물로, ‘장진식 코미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꽃의 비밀’에서도 장진식 유머를 실컷 감상해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장진을 꽤 긴 시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근처의 카페였는데, 인터뷰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나 됐을까. 장진이 불쑥 인터뷰를 끊었다.

“괜찮으시다면 제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하실까요? 바로 요 앞인데.”

장진의 개인 사무실 구경도 할 겸 흔쾌히 자리를 옮겼는데, 그의 ‘필름있수다’ 사무실은 진짜로 ‘코앞’에 있었다. 장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 한 대를 꺼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듯 피웠다. “호칭이 여러 개인데 기사를 쓰려면 하나로 통일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그는 “작가”라고 했다. 연출가, 감독은 대중에게 익숙할지 몰라도 늘 하는 일이 아니니 직업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꽤 많은 담배를 피웠고,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었다. 그 덕에 나도 한 대 정도는 얻어 피웠던 것 같다.


연극 ‘꽃의 비밀’ 공연 장면.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연극 ‘꽃의 비밀’ 공연 장면.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꽃의 비밀’은 이번 시즌이 10주년 무대다. 놀랍게도 장진은 이 연극의 대본을 1주일 만에 썼다고 한다. ‘웰컴 투 동막골’처럼 ‘꽃의 비밀’도 오지마을이 배경이다. 강원도 오지마을 동막골과 달리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시골 마을(빌라페로사)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장진이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겨냥해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막골처럼 쓰면 더 쉬웠을 테지만 사투리의 구수한 맛을 외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꽃의 비밀’은 아예 번역극처럼 썼다고 한다. 실제로 이 연극을 보고 있으면 외국 유명 극작가의 작품을 라이선스로 들여와 공연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는 장진이 노린 바다.

‘꽃의 비밀’은 한동네에 사는 네 명의 가정주부가 벌이는 거액의 보험금 타 먹기 에피소드를 다룬, 전형적인 요절복통 극이다. 이런 장르의 특징은 불건전하지만 웃음과 연민을 일으키는 목적(이 작품에서는 보험금 타 먹기)을 위해 최초의 거짓말이 등장하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게 되고, 더 큰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욱더 큰 거짓말이 등장하고, 결국 거짓말 대환장 파티 끝에 파국을 맞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연극으로는 ‘라이어’ ‘보잉보잉’ 시리즈가 있다.

마을의 왕언니 소피아 집에 모여 여자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술고래’ 자스민, ‘여배우가 될 뻔했던’ 모니카, ‘공대 수석 졸업’ 지나까지 네 명의 여인은 유벤투스와 밀란의 축구 경기를 보러 외출한 남편들의 트럭이 브루노 계곡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망연자실하던 네 여인은 남편 이름으로 가입한 20만 유로의 보험금을 타서 여생을 보내자는 데에 의기투합한다. 각자 남편으로 변장하고는 보험공단 소속의 의사 카를로와 간호사 산드라의 방문을 받으면서 ‘최초의 거짓말’을 시작한다.

장진의 연극은 호화스러운 캐스팅이 늘 화제가 되곤 하는데, 이번 시즌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황정민 ‘소피아’, 조연진 ‘자스민’, 안소희 ‘모니카’, 김슬기 ‘지나’, 김대령 ‘카를로’, 전윤민 ‘산드라’로 보았다. 물론 ‘소피아’ 황정민은 우리가 아는 영화배우 황정민과는 동명이인의 여배우다. 하루 종일 취해 있는 ‘자스민’은 장영남, 이엘의 이름도 보인다. 조연진은 초연 때부터 ‘꽃의 비밀’과 함께해 온 배우로 자스민의 교과서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네 여인 중 ‘미모 담당’으로 불리는 ‘모니카’는 이연희, 안소희, 공승연이 맡았다. 2016년 시즌에서 소유진이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공대 수석 졸업생이자 네 여인 중 막내인 ‘지나’는 김슬기와 박지예가 캐스팅됐다. 김슬기는 장진 사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황정민의 걸쭉한 ‘소피아’ 연기는 이 극의 중심이다. 지구본의 축같이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캐릭터들이 돌아간다. 예술학교를 나와 인기스타가 될 뻔했지만 졸업작품에서 ‘무솔리니’로 출연하는 바람에 꿈이 날아간 ‘모니카’의 안소희는 지난해 ‘클로저’에 이어 두 번째다. 연이은 연극무대 출연인데, 가수 출신 배우인 만큼 뮤지컬 연기도 궁금하다.

오랜만에 봐도 ‘장진식 코미디’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40대 중반에 쓴 작품이지만 그의 개그는 결벽증을 의심할 정도로 아재스러움을 절묘하게 피해 간다. 이 극의 정점인 모니카의 ‘직장 검사’ 장면은 해외 관객들마저 뒤집어 놓을 만하다. 참고로 ‘꽃의 비밀’은 2019년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에서도 공연됐다. 사진 제공=장차·파크컴퍼니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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