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
실제 모습 대신 애니 같은 캐릭터로
실시간 방송 플랫폼에서 라이브까지
미니앨범 보이그룹 올 첫 밀리언셀러
외모 품평 등서 자유 vs 진정성 의문
K팝 팬덤 사이에서도 논쟁 이어져
세계관 활용 K팝 어디까지 허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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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가 좀 이런 문화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는….”
최근 한 라디오 진행자가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에 관해 남긴 평이다. 버추얼 아이돌이란 개념이 낯선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진행자의 발언 이후 플레이브의 팬덤 ‘플리’는 해당 라디오 프로그램 홈페이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진행자와 프로그램을 성토하고, 사과·하차를 요구했다. 거센 항의에 진행자는 다음 날 방송에서 플레이브에 사과했다.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SNS와 K팝 커뮤니티에선 플레이브의 존재와 정체성, 인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K팝 아이돌 팬덤과 플레이브 팬덤 간 대립도 치열하다. 우리 사회는 성큼 다가온 가상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논쟁이 벌어지는 까닭은 플레이브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 3일 플레이브가 발표한 3번째 미니앨범 ‘칼리고 파트1’은 초동(발매 첫 일주일 동안 음반 판매량) 103만 장을 넘기며 2025년 보이그룹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서 앨범에 수록된 ‘대시(Dash)’ ‘리즈(RIZZ)’ ‘크로마 드리프트(Chroma Drift)’ 등 5곡은 24시간 동안 누적 스트리밍 횟수 1100만 회를 기록했다. 국내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빌보드 차트까지 발을 디뎠다. 지난 22일 기준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 195위로 진입한 앨범과 함께 미국을 제외한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대시’ ‘리즈’ ‘크로마 드리프트’ ‘아일랜드(Island)’ 등 4곡을 올렸다. 한국에서의 폭발적 소비가 세계 시장에서 성적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화제의 그룹이다 보니 부르는 곳도 많다. 메이크어스가 운영하는 브랜드 딩고의 인기 콘텐츠 ‘딩고 킬링보이스’에 등장해 라이브를 선보인 이들은 다수의 유튜브 채널과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플레이브는 2023년 3월 12일 데뷔한 버추얼 보이그룹이다. 시각효과(VFX) 전문기업 블래스트가 언리얼엔진 기반의 그래픽 창작과 모션캡처 기술을 활용해 예준, 노아, 밤비, 은호, 하민의 캐릭터와 무대를 제작한다. 1990년대 실험적으로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들처럼 아바타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플레이브를 움직이게 하는 건 기계코드가 아니라 특수장비를 착용하고 직접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신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기록해 표현하는 이 기술은 영화·게임·스포츠 등 여러 영역에서 이미 활용됐고,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개인 단위로까지 보급돼 유튜브 및 실시간 방송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크리에이터의 등장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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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버추얼 아이돌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정교한 몸동작과 표정을 가상의 자아에 투영하면서도 개인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소통할 수 있는 실시간 라이브·토크쇼로 팬덤을 넓혀 나간다. 음악방송, 콘서트도 실시간 송출이다. 과거에는 기술의 한계로 사전 녹화된 무대를 방영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지금은 조금의 지연 없이 생생한 움직임을 전달한다.
사실 플레이브가 최초의 버추얼 그룹은 아니다. 한국의 첫 버추얼 그룹은 2021년 데뷔한 리:레볼루션이다. 같은 해 인기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이 결성한 6인조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이 최초의 버추얼 걸그룹 칭호를 갖고 있다. 특히 이세계아이돌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인기를 얻으며 국내 첫 오프라인 메타버스 페스티벌 ‘이세계 페스티벌’을 진행하는 등 버추얼 아이돌의 인지도를 넓힌 선두주자다.
플레이브는 그 궤적을 더욱 크고 넓게 펼치는 팀이다. 이들은 컴퓨터가 창조한 가상세계의 외계인이 지구 개발자를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한다는 고유의 세계관을 확립했다.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기술과 관련해서도 높은 이해도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부분은 자체 생산이다. 플레이브는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 등 모든 창작요소를 스스로 해낸다.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숙했던 히트곡 ‘웨이 포 러브(WAY 4 LUV)’와 ‘펌프 업 더 볼륨(Pump Up The Volume)’,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대시’까지 플레이브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대중적 감각의 히트곡을 만들 수 있는 팀이라는 강점을 거듭 증명하고 있다.
플레이브의 인기와 최근 벌어진 논쟁에서 버추얼 아이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전문가 및 학계는 사생활 침해, 스캔들, 외모 품평 등 K팝 아이돌 시스템의 고질적 부작용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버추얼 아이돌의 가능성을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SNS에서 벌어지는 K팝 팬들의 다툼 가운데는 플레이브를 연기하는 멤버의 ‘본체’를 폭로하고, 그들의 과거 행적을 공개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다. 대중은 신상을 노출하지 않고 사이버 세상의 캐릭터로 활동하는 버추얼 아이돌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는다. 그러나 플레이브 멤버들은 버추얼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낮은 품질의 음악과 안무를 제공받는 데 지쳐 직접 노래를 만들고 안무를 짜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진행자처럼 미디어의 시선은 물론 K팝 팬덤에게도 플레이브는 아직 낯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제작사 블래스트가 플레이브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외형 대신 만화풍 캐릭터로 친근감을 의도했다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버추얼 아이돌을 지탱하는 문법은 기본적으로 서브 컬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익숙지 않다면 가상 아이돌의 존재와 그들을 응원하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플레이브는 역설적으로 더욱 K팝의 문법에 충실하다. 세계관에 충실한 무대 및 활동과 더불어 콘셉트 이면의 인간적 면모를 아낌없이 내보이는 실시간 소통을 병행한다. 그룹의 성공을 위해 팬덤과 가수가 맺는 가상의 관계와 세계가 플레이브에도 작동하고 있다. 갈등과 결집이 반복되는 가운데 플레이브의 선전은 익숙하지만,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K팝 세계 속 관계 맺기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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