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43. 2023년 공군 레드플래그 알래스카 ①
역대 최대 규모 훈련 28일간 동행취재
타고 갈 시그너스 전장 59m ‘웅장’
연료 108톤 1만5320㎞ 비행 가능
9가지 반찬 도시락으로 기내 식사
조종사 멋진 비행 솜씨 덕 멀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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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팀장이 오더니 말을 건넨다. “혹시 미 알래스카에 갈 생각 있어요?” 갑자기 웬 알래스카. 이유를 물어보니 공군이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FA·Red Flag Alaska) 훈련을 하는데, 동행취재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KF-16 전투기 6대, C-130 수송기 2대, KC-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1대 등 항공기 9대와 임무요원 180여 명이 참가한다고 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기간도 짧지 않다. 꽉 찬 4주, 무려 28일이다.
이제는 후배도 많아 해외 출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팀장의 제의는 몇 차례 더 이어졌다. 그러면서 달콤한 수사가 덧붙여졌다. “알래스카에 가면 오로라도 볼 수 있고, 연어 낚시도 가능하대요. 주말에 잘하면 라스베이거스도 가 볼 수 있다던데.”
고민에 빠졌다. ‘갈까, 가지 말까’. 마음속 추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답을 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욕심도 나고,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래 가 보자. 내 생애 언제 알래스카에 갈 일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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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이 흘러 5월 31일, 공군 충남 서산기지 주기장에 서 있었다. 주기장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KC-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시그너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시그너스는 생각보다 컸다. 웅장한 모습이다. 마침 옆에는 C-130 수송기도 주기돼 있었다. 둘을 비교하니 더 차이가 났다. 마치 호랑이 대 고양이처럼.
시그너스를 한 바퀴 돌아보니 꼬리날개에 001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2018년 11월 첫 번째로 도입된 1호기라는 뜻이다. 이를 시작으로 시그너스는 2019년 4월 2호기, 8월 3호기, 12월 4호기가 들어왔다. 이 1호기가 알래스카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수송하고, 훈련에 참가해 우리 공군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기내는 민간항공기와 똑같았다. 모르고 타면 차이를 느끼지 못할 듯했다. 다른 것은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안내해 준다는 것뿐.
재미있는 사실은 입구 쪽에 좌석 안내도를 붙였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지 이름이 적혀 있다. 300명까지 탈 수 있지만, 이번 탑승인원은 150여 명. 덕분에 두 좌석당 한 명씩 편히 앉아 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안내도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침대 표시였다. 호기심에 그곳으로 향했다. 여객기 가운데 가장 크다는 A-380, 그중에서도 일부에서나 침대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그런 건가? 그럼, 잠깐 누워 봐야지 생각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가운데 4열을 손잡이를 올려 평평하게 만든 뒤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아 놨다. 침대의 정체는 그러했다. 너무도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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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내 좌석은 어떤 목적이냐에 따라 이런저런 모습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원형 모델이 에어버스의 A-330 MRTT(Muti Role Tanker Transport)이기에 공중급유, 수송 등 여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번처럼 인원 수송이 주목적일 때는 일반 수송기처럼 이용할 수 있지만 유해 봉환, 화물기, 의무수송기 등 다양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6·25전쟁에서 희생된 유해 봉환,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한 아크부대원 교대, 코로나19 감염에 노출된 이라크 파견근로자·교민 귀국 지원, 미국에서 지원한 얀센백신 수송, 수단 교민 귀국 지원 등 시그너스가 수행한 해외 비행임무는 이처럼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시그너스 본연의 임무는 공중급유다. 말 그대로 비행 중 전투기에 기름을 넣는 것이다. 기체 크기가 전장 59m, 전폭 60m로 실을 수 있는 최대 연료량이 108톤에 달한다. 최대 항속거리는 1만5320㎞다. 시그너스는 4시간 체공 시 F-15K는 10대, KF-16은 21대에 급유할 수 있다. 공군은 시그너스 4대를 운용 중이다. 이 4대가 전개한 공중급유작전은 도입 후 2023년 4월 중순까지 7400여 회에 이른다.
공군이 해외 훈련에 시그너스를 투입한 것은 2021년 레드플래그 알래스카 훈련이 최초다. 시간과 비용 절감은 물론 장병들의 편의성도 높아졌다. 2022년 호주에서 열린 다국적 연합 공중훈련 ‘피치블랙(Pitch Black)’에도 투입됐다.
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식사시간이 됐다. 도시락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밥과 국을 제외한 반찬은 무려 9가지. 그렇다면 이 항공기를 타면 매번 이렇게 먹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요’다. 출발하는 공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이번처럼 군공항에서 떠나면 도시락을, 민간공항에서 떠나면 민항기처럼 일반 기내식을 준비한다는 게 기내 안내를 맡은 군 승무원의 답변이다.
식사는 도착 2시간 전쯤 다시 한번 나왔다. 샌드위치 2조각과 과일, 주스로 구성됐다. 새벽녘(현지시간 오전 6시경)인 것을 감안해 속이 부대끼지 않도록 조치한 듯했다.
다행스럽게 우려했던 난기류는 많지 않았다. 앞서 당일 오전에 공지가 있었다. “비행 전체 구간에 터뷸런스(난기류) 구간이 길게 이어지다 보니 항공기 내에서 멀미나 컨디션 난조가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 개별적으로 비닐봉지를 준비해 달라”는.
하지만 조종사의 멋진 비행 솜씨 덕분인지, 난기류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몇 번의 작은 요동만 있을 뿐 기내는 비행 내내 조용했다. 검정 비닐봉지를 샀던 이들의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전 7시30분쯤 기장 안병수 소령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착륙지점인 아일슨공항에 30여 분 후 도착할 예정입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착륙. 8시간여에 걸친 비행이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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