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은퇴 투어

입력 2025. 02. 20   15:42
업데이트 2025. 02. 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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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야구 팬이라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오로지 뉴욕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만 입고 뛰면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를 지배했던 오른손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기억할 것이다.

19시즌을 뛰며 정규리그 통산 1115경기에 등판, 1283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82승 60패 652세이브, 평균자책점 0.205를 기록했다. MLB 통산 세이브와 평균자책점은 역대 1위다. 가을에는 더 강해져 ‘미스터 옥토버’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16번이나 포스트시즌을 치렀고 통산 성적 96경기 141이닝 8승 1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0.70을 남겼다. 포스트시즌 출전과 세이브, 평균자책점 모두 MLB 역대 1위다. 리베라가 뒷문을 지키는 동안 양키스는 3회 연속 포함해 월드시리즈를 5차례나 제패하며 왕조의 부활을 알렸다.

리베라는 2013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은 뒤 5년 만인 2019년 1월 만장일치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득표율 100%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최근 일본 출신 교타자로 MLB를 평정했던 스즈키 이치로가 도전했으나 단 한 표가 부족해 만장일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리베라를 상징하는 주 무기는 커터(컷 패스트볼)였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커터를 던지는 비율이 80~90%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칠 테면 쳐 보라는 자세로 대놓고 던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옆으로 슬쩍 흐르거나 떨어지는 등 커터의 움직임이 여럿이긴 했다. 리베라의 커터가 얼마나 위력이 있었던지 왼손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며 방망이를 부러뜨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리베라의 커터는 2013년 열렸던 은퇴 투어에서도 일화를 남겼다. 은퇴 투어는 스포츠사에 전설로 남을 정도의 스타들이 마지막으로 뛰는 시즌, 마지막 원정경기를 돌 때 각 구단이 열어 주는 기념행사다. 201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강타자 치퍼 존스가 은퇴할 때 다른 팀에서 기념선물을 준 게 그 시작이었다. 리베라는 자신의 은퇴 투어 당시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색다른 선물을 받았다. 부러진 방망이를 모아 만든 흔들의자였다. 의자 등판에는 ‘부러진 꿈들의 의자(Chair of Broken Dreams)’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수많은 타자를 좌절케 했던 리베라의 커터를 기리는 뜻깊은 선물인 셈이다.

‘배구 여제’ 김연경의 은퇴 투어가 시작됐다. 국내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와 여자부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 국내 프로 스포츠 전체를 따져 봐도 흔한 일이 아니다. 야구에서만 2017년 이승엽(현 두산 베어스 감독), 2022년 이대호(전 롯데 자이언츠)의 은퇴 투어가 있었을 뿐이다.

김연경은 한국을 넘어 세계 여자배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별 중의 별이다. 2005-2006시즌 신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데뷔해 첫해 신인상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함께 거머쥐었다. V리그 역대 최다인 정규 MVP 6회 수상 기록도 썼다.

일찌감치 해외로 진출해 일본·튀르키예·중국 무대를 휩쓸고 돌아왔고 한국 여자배구가 2012 런던올림픽과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쓰는 데 앞장섰다. 도쿄올림픽 직후 태극마크를 반납했던 그는 지난 13일 경기 뒤 현역 은퇴를 깜짝 선언했다. 사흘 뒤 IBK기업은행과의 원정경기가 은퇴 투어의 시작이었다. 김연경의 이름과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기업은행 유니폼에 기업은행 선수들이 사인을 담아 선물했다. 만원 관중이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를 응원했다. 김연경의 은퇴 투어는 다음 달까지 이어진다. 김연경이 또 어떤 뜻깊은 선물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한국 스포츠에 길이 남을 은퇴 투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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