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병이라는 꿈을 품은 지 10년, 그 여정을 현실로 이루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 후 군 최고의 혜택이라고 불리는 위탁교육 대상자로 선발돼 치과위생사 면허를 취득했고, 1년6개월간 임무를 처리하며 기다려 온 해외파병 기회를 얻었다. 현재 레바논평화유지단(동명부대) 30진 치위생 부사관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며,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미소를 선물하고 있다.
레바논의 현재 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지속적인 분쟁과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주민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치과 진료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 현지인들에겐 사치에 불과하다. 민군작전 의료지원은 치과버스를 이용해 5개 마을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치과버스는 정식 진료소에 비해 공간이 협소하고 장비도 제한적이다. 기본적으로 감염관리와 위생상태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진료 전후로 기구 소독·멸균에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 의료지원을 나갔던 부르글리아 마을에선 주민들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 줬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는 오랜 고통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심각한 치아 통증을 겪고 있었지만, 예방적 치료는커녕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식 치아를 방치한 결과 발치가 시급한 환자가 많았고, 그 고통은 신체적 아픔을 넘어 삶의 질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치과 진료는 삶의 희망을 되찾아 주는 과정이다. 군의관과 협소한 공간에서 호흡을 맞추며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의 통증과 불안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치료가 끝난 뒤 환자의 얼굴에 번지는 안도감과 감사의 미소를 볼 때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오랜 치통에 시달리다가 찾아온 남성이 진료 뒤 환한 얼굴로 “선물 같은 하루입니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장면이었다. 언어 차이로 길게 대화할 순 없었지만, 그의 진심은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됐다. 그때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군에서 치위생 부사관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느꼈다.
전쟁이라는 절망의 한가운데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 민군작전과 의료지원은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새로운 미소를 되찾아 주는 것은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오늘도 환자들의 밝은 미소를 꿈꾸며 진료현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