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 대로, 닿는 대로 - 16. 양산 & 울산 나들이
매서운 한파는 온데간데없고 부드럽게 살랑이는 바람이 이따금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봄은 어느덧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남쪽으로부터 말이다. 제주에서는 유채가 노란 물결을 일렁이고, 전남 광양에서는 새하얀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단다. 그보다 이른 시기에 진분홍빛으로 물드는 홍매화 또한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봄의 전령을 자처한다. 봄을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 당장 통도사로 떠나자. 기나긴 소나무 숲길과 천년고찰의 조화가 아름답게 펼쳐진 곳에 홍매화 나무 몇 그루가 화룡점정을 찍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으니까. 홍매화 하나만 보고 가도 설레는 여행이 될 테지만, 주변에 편안하게 둘러볼 만한 여행지가 많다. 풍경과 분위기, 맛과 멋을 모두 사로잡은 양산, 울산의 특별한 장소들을 함께 소개한다.
|
양산 통도사
양산 통도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해 창건한 사찰이다. 이 천년고찰은 예부터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수계를 받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통도’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도사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불리기도 한다. 통도사는 부처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불보사찰’, 해인사는 불법이 새겨진 팔만대장경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법보사찰’, 송광사는 승려들이 모여 수련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른다. 창건 당시 자장율사가 모시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는 지금도 대웅전 뒤에 조성된 금강계단에 안치돼 있다. 금강계단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어서인지 대웅전 내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를 직접 모신다는 것이다. 참고로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가유산 국보로 지정돼 관리받고 있다. 사찰 경내에 자리한 여러 전각도 통도사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불교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통도사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통도사 산문부터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인 ‘무풍한송길’은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대상)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훌륭한 풍경과 정취를 자랑한다. 길이는 약 1.6㎞, 폭은 5m에 달하는 규모로 조성돼 있지만, 빼곡하게 자리 잡은 소나무가 오가는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모양새다. 통도사의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홍매화를 잊을지도 모른다. 홍매화는 통도사 영각 앞에 자리한다. ‘자장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370여 년 전 이곳을 이끌었던 승려들이 자장율사의 창건을 기념하는 의미로 심은 것이란다. 유난히 곧게 뻗은 기둥, 방사형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가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홍매화의 자태가 무척 영롱하게 느껴진다. 자장매의 개화가 곧 봄이 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도 이 화려한 모습 덕분이지 않을까. 봄이다. 마음껏 감상하시라.
|
언양불고기 거리
통도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울산 언양읍이 있다. 언양읍은 부산·울산·경남을 연결하는 중심지로, 소위 한국 3대 불고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언양불고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언양불고기는 얇게 썬 소고기를 적당히 양념한 뒤 석쇠 위에서 구워 내는 방식이 특징이다. 간장 기반의 달큼함과 고소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뛰어난 풍미를 자랑한다. 언양으로 들어서면 불고기 전문점이 밀집한 ‘언양불고기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식당별로 조금씩 다른 맛의 개성을 보여 주지만, 석쇠에 올려 구운 고기의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은 대동소이하다. 밑반찬으로 곁들여지는 나물이나 김치 등은 한정식 스타일이이서 한우 특유의 담백함과 궁합이 좋다. “이왕 언양에 왔으니 불고기 맛을 보고 가야 한다”는 여행객이 많을 정도로 이 지역에 뿌리내린 음식문화이니 일부러 찾아갈 가치가 충분하다.
복순도가와 카페 농도
언양읍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최근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 양조장이 자리한다. ‘복순도가’가 바로 그곳이다. 풍부한 청?감을 자랑하는 ‘복순도가 손막걸리’로 전국구 명성을 얻은 양조장이다. 인공 탄산이 아닌 100% 발효 탄산으로 빚어내는 게 특징으로, 목에서 넘기는 순간 기포가 가볍게 터지는 식감이 일품이다. ‘조선의 돔페리뇽’이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린다. 양조장 내부엔 술을 빚는 전 과정을 살펴보기는 어려워도 막걸리 시음이나 구매를 위한 쇼룸이 마련돼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가볍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복순도가 주변으로는 신불산과 간월산 등 이른바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산봉우리들이 그림같이 이어진다. 산자락 너머로 펼쳐지는 울주군의 자연 풍경은 공업도시 울산의 인상과는 또 다른 무드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카페 농도’다. 전통한옥 구조를 차용한 채 등억못과 영남알프스 능선 방향으로 통유리창을 배치한 공간이다. 맑은 날에는 수면에 비친 산 능선이 더욱더 또렷해지며 한 폭의 동양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음료와 디저트는 물론 가볍게 식사하기에 좋은 ‘농도정식’을 맛볼 수도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사시사철 초록빛 감성을 즐기고 싶다면 울산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태화강 국가정원은 순천만정원에 이어 국내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사시사철 초록빛으로 가득한 십리대숲을 품은 공간이다. 십리대숲은 울산 12경 중 하나로 지역주민들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이다. 10리, 그러니까 4㎞에 걸쳐 이어지는 대나무 숲이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 옛날부터 태화강 주변에는 대나무가 잘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범람이 잦았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지역주민들이 추가로 식재한 게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현재 십리대숲은 도심 속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숲 내부로는 긴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데, 시끌벅적한 차량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다. 오솔길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가만히 앉아 쉬어 가거나 강바람을 맞으며 둑길을 걸어 보는 것도 좋다. 밤에는 ‘은하수길’로 불리는 조명 산책로가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 낸다. 대나무 숲 사이를 비추는 은은한 조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사진=필자 제공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