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우리 곁에, 예술

향, 향수를 자극하다 

입력 2025. 02. 13   18:22
업데이트 2025. 02. 1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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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전시 공간 전시 - 아르코미술관과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展

공간
개관 50년 넘은 ‘마로니에 공원 터줏대감’
건축거장 김수근이 ‘빛과 벽돌’로 쌓아올린 작품
전시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고향에 얽힌 기억’ 600여 편 배너에 빼곡히
17가지 키워드로 조향도…추억 소환 절로



서울 동숭동 일대, 흔히 대학로라고 부르는 이곳은 대한민국 공연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밀집돼 있어 수많은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고, 거리에서도 버스킹과 마술쇼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곳에도 시각예술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전시 공간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공공미술관인 ‘아르코미술관’이다.

1974년 ‘미술회관’으로 시작한 아르코미술관은 지난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미술관이다. 1979년 지금의 자리로 건물을 지어 이전했고, 2002년 ‘마로니에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2005년 지금의 ‘아르코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아르코(ARCO)’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영문 명칭(Arts Council Korea)을 줄인 것이다. 아르코미술관은 긴 역사만큼 수많은 전시를 개최하며 작가와 관객을 위한 공공미술관으로 역할을 해 왔다.

아르코미술관은 대학로 중심부 마로니에 공원에 있다. 붉은색 벽돌 건축이 매우 인상적인 미술관이다. 대학로의 상징과도 같은 이 붉은색 벽돌 건물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작품이다. 벽돌은 1980~1990년대 국내 주택 건축에 많이 사용됐던 재료로,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김수근은 생전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할 만큼 벽돌을 사랑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아르코미술관 외에도 아르코예술극장, 경동교회, 공간 사옥, 샘터 사옥 등 벽돌을 사용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특히 아르코미술관 건물은 201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구정아-오도라마 시티’(2024년 12월 20일~2025년 3월 23일)라는 긴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에는 다양한 정보가 압축돼 있다. 우선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라는 전시 제목을 통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최된 60번째 비엔날레, 그중에서도 한국관의 귀국 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된 세계적인 현대미술 축제다. 베니스비엔날레에는 각국 대표예술을 소개하는 26개의 ‘국가관’이 있다. 한국관은 이름 그대로 한국 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구정아 작가의 전시가 개최됐다. 베니스를 방문해야만 볼 수 있던 한국관 전시를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 공간이 달라진 만큼 베니스비엔날레와 완벽히 같은 구성은 아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맥락은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구정아-오도라마 시티’에서 구정아 작가의 전시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도라마’라는 단어에서 순간 멈추게 된다. 이 단어는 기존에 없는 전시를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창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 소개 글을 통해 ‘오도라마’의 뜻이 향을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drama)의 ‘-라마(-dama)’를 결합한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겠지만, 제목 그 자체로 전시를 연상해 보는 것도 전시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오도라마’, 즉 향에 관한 이야기라는 전시 제목은 미술의 시각성과 향이라는 후각성이 어떻게 맞닿아 있을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르코미술관 입구와 전시 공간은 몇 개의 계단을 올라 다시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붉은 벽돌 벽면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전시실에 도착한다. 천장에 매달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배너 120개의 모습이 압도적이다. 배너에는 약 600편의 사연이 인쇄돼 있다. 구정아 작가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품 설치를 위해 약 3개월 동안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수집했다. 그 결과로 수집된 600여 편의 기억을 배너에 인쇄·설치한 것이다. 마치 미로처럼 빽빽하게 설치된 배너 사이를 이동하며 향기에 관한 타인의 기억과 이야기들을 한 편씩 읽다 보면 즐거움, 슬픔,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야기와 연관된 향을 상상하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다. 작품이 전시돼 있고,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일반 전시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미술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 어떤 것이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특정한 향을 상상하게 하는 과정은 미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 필자 제공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 필자 제공



다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연결되는 두 번째 전시실에 도착하면 첫 번째 전시실과 매우 다른 느낌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마치 텅 빈 듯한 넓은 전시 공간 안에는 뫼비우스 띠 모양의 나무 조각 몇 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향기가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앞서 수집된 기억과 이야기들을 ‘오도라마 시티, 도시 향기, 밤공기, 사람 향기, 서울 향기, 짠 내, 함박꽃 향기, 햇빛 냄새, 안개, 나무 냄새, 장독대, 밥 냄새, 장작 냄새, 조부모님 댁, 수산시장, 공중목욕탕, 오래된 전자제품’이라는 17개의 키워드로 분류했다. 이 기억들에서 선별한 주제어와 기억을 향을 만드는 조향사 16명에게 전달해 17개의 서로 다른 향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조향사들이 만든 17개의 향을 직접 맡을 수 있다.

마치 채움과 비움처럼 상반되는 두 개의 공간을 이동하다 보면 앞서 채워 온 향에 대한 타인의 기억이 전시 공간 곳곳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향과 뒤섞인다. 각각의 향이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지 감각을 동원해 작품을 감상하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새로운 기억과 연결고리가 생겨나는 듯하다. 이것은 다양한 기억과 역사를 품고 있는 아르코미술관 공간과 어우러지며 좀 더 특별해진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본다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공간 자체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몸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공연예술의 성지 대학로에서 아르코미술관 전시실을 걸으며 타인의 기억을 공유하고 향을 경험하는 것은 시각을 넘어온 몸의 감각으로 미술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를 통해 따뜻한 붉은 벽돌의 아르코미술관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기억과 이야기, 향을 각자의 몸과 감각으로 경험해 보면 어떨까.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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