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수련’
그림 앞에 놓인 장의자는
작가가 12년간 표현하려 한 영혼을
온전히 보려면 오래 걸리니
쉬면서 천천히 감상하라는 의미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근대와 현대의 유명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상설 전시된 방이 따로 있다.
모네가 그린 수련 시리즈는 250점 정도 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수련은 세로 2m, 가로 4.2m의 작품 3개가 가로로 연결된 대형 그림이다.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에서 모네는 1914년부터 1926년 사망할 때까지 이 작품을 그렸다. 가운데 캔버스를 정면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캔버스 2개가 걸린 벽면은 각도를 안쪽으로 구부려 감상자가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네의 수련을 감상한다. 모네의 수련 앞에는 장의자가 놓여 있다. 그건 이 작품을 온전하게 감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의자에 앉아 쉬어 가면서 작품을 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감상자는 모네의 작품 앞에 선 채로 1분을 버티지 못하고, 시간이 아깝다는 듯 후다닥 다른 방으로 옮겨 간다. 모처럼 온 뉴욕의 일정이 짧은 데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봐야 할 다른 작품이 너무도 많아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물질엔 물격이 있다. 한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는 데 오랜 우정의 시간이 걸리듯, 물격이 자신의 정신을 드러내고 그걸 제대로 알아차리는 데도 긴 감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컨대 의자에 앉아 모네의 수련을 30분간 지켜본다면, 1분 동안만 본 수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수련이 보인다. 1시간을 앉아 있으면 지베르니 정원 연못의 다른 생명체가 수련과 함께 꿈틀거리는 게 느껴질 것이다.
2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그림 앞을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기도 하고 젊은 부부가 눈빛을 반짝이기도 했다. 멍한 표정의 노인도 느린 걸음으로 지나갔다. 2시간이나 수련을 응시한 관람객은 그림 속에서 황혼을 등진 모네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졌음을 눈치채게 된다.
2시간 동안 모네의 그림에 집중한 관람객은 1시간59분간 다른 그림을 볼 기회를 놓쳤다. 그 대신 모네의 영혼을 만났다.
작품이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그 물질에서 물격이 느껴지고, 필경 그 물격이 작가의 인격으로 현현함을 경험하게 된다. 뭔가를 포기하고 비운 대신 얻게 되는 귀한 경험이다. 모네가 12년간 그린 수련 앞에 1분 동안만 서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다. 2시간도 부족하다. 그나마 ‘느린 최선’을 다할 때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다른 목소리와 다른 경지의 느낌을 전해 준다.
김환기(1913~1974)는 1970년에 그린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유명하다. 5년 전 김환기의 대형 작품 ‘우주’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61억 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는 뉴스는 김환기를 대중적으로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김환기가 말년에 그린 이들 작품은 작가가 일일이 하나씩 찍은 숱한 점으로 이뤄져 있다. 가까이서 보면 자그마한 점 하나마다 정성이 대단하다. 공들인 많은 점이 그의 생명을 일찍 앗아 갔다. 작품 제작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만큼 감상의 시간도 길어야 한다.
김환기의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광활한 우주에서 그를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질뿐인 그림에서 물격과 인격을 만나는 데는 ‘느린 최선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기만 한 사람에게 작가와 작품은 결코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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