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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전투의 역사적 교훈과 나의 다짐

입력 2025. 02. 12   15:19
업데이트 2025. 02. 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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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소령 육군37보병사단 천군여단
정정훈 소령 육군37보병사단 천군여단



세계 3대 동계전투에 이름을 올린 6·25전쟁 장진호전투는 1950년 겨울,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에 유엔군과 중공군이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벌인 전투다. 

11월 26일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 북진하던 미 해병1사단은 호수 근처 산속 곳곳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 제9병단의 공격을 받고 포위됐다. 미 해병1사단은 중공군 포위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장진호에서는 전투에 의한 전·사상자보다 혹한의 기상으로 비전투손실에 의한 전·사상자가 훨씬 더 많이 발생했다. 이는 동계작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투 참전자들의 증언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유엔군 간호사는 “중대 위생병들은 모르핀이 얼지 않도록 입속에 넣어 다녔고, 혈액이 얼어 버려 수혈하지 못해 많은 전우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고 증언했다.

중공군 병사는 “비상식량으로 삶은 감자가 3개 있었는데, 돌처럼 얼어 먹지 못했다. 죽은 동료의 총을 회수하려 했을 때 총에 얼어붙은 그의 손을 부러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기상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전투식량과 수통의 물이 꽁꽁 얼어 먹을 수 없었다. 총기는 강중유가 동결돼 발사되지 않고, 박격포는 사격 반동으로 얼어붙은 땅에 부딪혀 포판이 파손되거나 불발탄이 다수 발생했다.

통신장비는 배터리 수명과 송수화기 성능이 저하돼 통신체계 유지가 제한되는 등 대부분의 무기·장비 기능 고장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육군37보병사단과 천군여단은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혹한기 훈련을 했다. 비전투손실이 없으면서 성과 있는 훈련이 가능하도록 선(先) 간부교육, 작전계획 및 임무 숙지, 야외기동훈련(FTX)으로 훈련 준비 단계부터 최선을 다했다.

아울러 동계 전사 연구·토의, 한랭 손상 예방교육, 동계 기상 극복을 위한 산악행군과 단계별 내한 적응을 거치는 등 체계적으로 훈련을 준비했다.

실제 작전 중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보다 낮았다. 혹한의 날씨에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혹한의 철야훈련으로 기상이 주는 마찰요소를 철저히 대비하고, 한계를 이겨 낼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았다.

장진호전투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며, 스스로 혹한에 굴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전력은 물론 전투기술을 구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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