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동계전투에 이름을 올린 6·25전쟁 장진호전투는 1950년 겨울,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에 유엔군과 중공군이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벌인 전투다.
11월 26일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 북진하던 미 해병1사단은 호수 근처 산속 곳곳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 제9병단의 공격을 받고 포위됐다. 미 해병1사단은 중공군 포위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장진호에서는 전투에 의한 전·사상자보다 혹한의 기상으로 비전투손실에 의한 전·사상자가 훨씬 더 많이 발생했다. 이는 동계작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투 참전자들의 증언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유엔군 간호사는 “중대 위생병들은 모르핀이 얼지 않도록 입속에 넣어 다녔고, 혈액이 얼어 버려 수혈하지 못해 많은 전우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고 증언했다.
중공군 병사는 “비상식량으로 삶은 감자가 3개 있었는데, 돌처럼 얼어 먹지 못했다. 죽은 동료의 총을 회수하려 했을 때 총에 얼어붙은 그의 손을 부러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기상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전투식량과 수통의 물이 꽁꽁 얼어 먹을 수 없었다. 총기는 강중유가 동결돼 발사되지 않고, 박격포는 사격 반동으로 얼어붙은 땅에 부딪혀 포판이 파손되거나 불발탄이 다수 발생했다.
통신장비는 배터리 수명과 송수화기 성능이 저하돼 통신체계 유지가 제한되는 등 대부분의 무기·장비 기능 고장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육군37보병사단과 천군여단은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혹한기 훈련을 했다. 비전투손실이 없으면서 성과 있는 훈련이 가능하도록 선(先) 간부교육, 작전계획 및 임무 숙지, 야외기동훈련(FTX)으로 훈련 준비 단계부터 최선을 다했다.
아울러 동계 전사 연구·토의, 한랭 손상 예방교육, 동계 기상 극복을 위한 산악행군과 단계별 내한 적응을 거치는 등 체계적으로 훈련을 준비했다.
실제 작전 중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보다 낮았다. 혹한의 날씨에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혹한의 철야훈련으로 기상이 주는 마찰요소를 철저히 대비하고, 한계를 이겨 낼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았다.
장진호전투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며, 스스로 혹한에 굴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전력은 물론 전투기술을 구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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