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경비원 10년 ‘지금, 이 순간’ 집중하는 법 배웠죠
형 죽음으로 삶에 무력감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위로받아
작품 마주하며 삶 돌아보고 반추
“예술 배우려 말고 예술 안에서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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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예술과 삶에 관한 통찰을 에세이로 엮어 큰 호응을 얻은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지난 8일 방한했다. 처음으로 한국 독자를 직접 만난 그에게서 명망 있는 직장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술관 경비원이 된 사연과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느낀 삶의 의미, 예술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원하는 대로 삶의 방향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야심만만한 젊은이였던 패트릭 브링리도 그랬다. 대학 졸업 후 유명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입사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고층 사무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자신의 인생이 그대로 수직 상승해 언젠가는 ‘빅리그’로 올라가리라고 여겼다.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한순간이었다. 계기는 형의 죽음이었다. 건강했던 형이 급작스레 암에 걸려 쇠약해지고, 죽음으로 끌려들어 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의 삶도 무력하게 시들었다.
그러던 그가 선택한 것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예술을 좋아해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를 하려면 예술사 석사는 물론 박사 학위까지 있어야 했기에 진입장벽이 낮은 일부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경비원이었다. 그리고 10년. 그는 이 기간 동안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내버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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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년간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았어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서 있는 게 제 역할이었고, 그것을 잘해 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큰 위로로 다가온 듯하다는 설명이다. 미술관 경비원의 생활은 어찌 보면 귀족 같은 삶이었다. 그는 미술관 개장 30분 전에 입실해 예술작품을 홀로 즐겼다. 개장 후에는 바삐 움직이는 이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저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비원의 삶은 귀족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렇게 경비를 서며 삶의 리듬이 프레스토(매우 빠르게)에서 안단테(느리게)로 변해 갔습니다.”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며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인생에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덕분일까. 브링리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더는 고요하고 정돈된 세계를 원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도망치고 싶었던 과거와 달리 여전히 살아 나가야 할 삶이 있고, 그 방향키는 스스로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서 온 역사적 유물과 미술품을 마주하며 그 기원을 살피고 예술적 성취를 논하기도 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반추했다. 가만히 응시하고 그것의 연유를 살피는 새 서서히 고개 드는 지난 삶의 그림자와 마주한 것이다. 그렇게 지난 삶에 드리운 그림자와 나란히 서 있는 법을 익혔다. 죽은 형을 떠올리고, 지난 삶을 돌아보고, 흘러간 시간을 받아들이게 됐다.
지난 역사가 남긴 유구한 표정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찾고 비로소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미술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다. 그것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세상에 나온 전말이다.
경비원을 그만둔 뒤 현재 맨해튼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중심으로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는 그는 멈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늘 세상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활짝 열어 두는 것은 쉽지 않다”며 “내가 마음이 좁아지고 있구나 싶을 때는 산에 간다든지, 미술관에 간다든지 시도해 보라”라고 말했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 뭔가를 상실한 이들을 위해서는 “친절하고 따뜻하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예술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삶의 의미를 곱씹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술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매일매일을 깨달아 가며 살아야 한다며 브링리는 “예술을 배우려 하지 말고, 예술 안에서 배우라(Don’t learn about art, learn from it)”라고 부연했다.
문득 가까이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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