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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기, 학과 습의 균형으로 성장하라

입력 2025. 02. 10   15:48
업데이트 2025. 02.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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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슬기 육군3사관학교 영어학과 교수·소령
선슬기 육군3사관학교 영어학과 교수·소령



새 학기는 사관생도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장교로서의 꿈과 사명을 가슴에 품고 새 학기를 맞이하는 그들에게는 배움을 향한 열정과 청춘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러나 학기 말에 이르면 공부했던 내용이 소위 말하는 ‘반납형 지식’이 되는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영어 과목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 원인은 우리가 학습 개념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학습의 본질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학습’은 ‘배우다’는 학(學)과 ‘익히다’는 습(習)으로 나뉜다. 우리는 종종 ‘학’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학습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배우고 나서 그것을 익혀야만 진정한 학습이 완성된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를 하나 배웠다고 하자. 그 단어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배운 단어가 막상 실전에서 잘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이는 배운 것에 비해 익히는 과정이 부족해서다.

‘신경가소성(神經可塑性·Neuro

plasticity)’ 원리로도 ‘학’과 ‘습’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뇌 속의 신경망이 아직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사고하고 연습하면 신경회로가 점점 확장된다. 마치 도로가 없던 곳에 새로운 길이 뚫리는 것과 같다.

뇌 신경망의 1차로를 처음 만드는 과정이 ‘학(배움)’이라고 한다면, 도로 확장공사는 ‘습(익힘)’과 같다. 학습할 때 여러 학문을 섭렵하겠다는 포부보다 진짜 필요한 건 하나하나 천천히 익히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꾸준함이다.

영어 학습을 다시 예로 들어 보자. 이미 배웠지만 반복된 낭독·시청·독서라는 익힘의 과정으로 특정 단어를 떠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절약된 시간을 통해 더 많은 표현을 생각하고 사용할 여유를 갖게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떠오르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해도 생각할 시간이 항상 필요한 것 아닌가?” 맞는 말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단어와 문장, 표현, 문법 등이 떠오르는 시간이 짧아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우리는 발화하는 순간 바로 다음 단어와 표현, 문장을 떠올릴 수 있게 되고, 이는 발화의 연속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 생각을 해당 외국어로 큰 지연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상태, 즉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점점 가까워진다.

요즘은 인공지능(AI)이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다. AI로 정보를 분석하고 재조직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 배움이 쉬워졌으나 항상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습’의 단계다. 새로운 지식에 반복적인 익힘과 숙고의 과정을 더할 때 비로소 지식이 점진적으로 쌓이고 확장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기억에 남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배움과 익힘은 함께 가야 한다. 익히는 과정이 결여된 배움은 쉽게 잊히고 응용할 수 없다. 하지만 천천히, 꾸준히 익혀 나간다면 속이 꽉 찬 배움이 돼 다른 배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 사관생도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학’과 ‘습’을 조화롭게 해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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