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나만큼 힘들었을 너, 그래서 우리…‘공감’ 다이브

입력 2025. 02. 10   15:55
업데이트 2025. 02. 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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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 아이브

일레븐·러브 다이브·애프터 라이크… 
‘나르시시즘 3부작’으로 Z세대 대표
첫 EP ‘아이브 마인’ 통해 세계관 확장 
멤버 개인의 서사에서 우리의 서사로
새 앨범 ‘…엠파시’선 단단한 자기애 
내면의 성숙·외면적 성장으로 안정감

 

아이브
아이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공감을 설명해 봐’ ‘너와 나, 우리’.

아이브의 새 앨범 ‘아이브 엠파시(IVE EMPATHY)’를 소개하는 영상을 구분 짓는 문장이다. 멤버들은 행복, 슬픔, 감사 등 다양한 감정의 초상을 연기하지만, 정작 함께 앉아 있는 공간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요 속의 외침’ 게임처럼 실수와 오해가 쌓이고, 방 안의 공기는 냉랭해지다 못해 단단히 얼어붙는다.

추운 겨울을 녹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주 보기, 고개 끄덕이기, 안아 주기. 분명한 목적이나 거창한 포장은 필요하지 않다. ‘우린 따로 이유를 묻지 않고 서로가 필요할 때가 있어. 그런 맘이 어떤 건지 잘 알기에 영원을 바라는 사이보단 지금을 이해해 주고 싶어’. 아이브는 이 공감을 반항아들의 동료애, ‘레블 하트(Rebel Heart)’라고 소개한다. 힘찬 행진과 함께 입춘(立春)을 알리는 걸그룹의 목소리에는 굳은 확신과 긍정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아이브의 음악세계 속 주인공은 ‘나’였다.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라고 감탄하던 데뷔곡 ‘일레븐(ELEVEN)’의 시선은 바깥을 향하던 기성의 K팝 걸그룹 주제와는 확실히 달랐다. ‘러브 다이브(LOVE DIVE)’는 어땠나. 나르시시즘을 찬미하며 이토록 매력적인 나에게 ‘숨 참고 러브 다이브’ 하라는 노랫말 속 매력의 샘은 깊은 자기애로부터 솟아 나왔다.

‘방금 내가 말한 감정 감히 의심하지 마’라는 당당한 태도로 댄스플로어를 장악한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까지 이어진 ‘나르시시즘 3부작’ 혹은 ‘감히 3부작’은 주체성으로 무장한 새 걸그룹의 빠른 가요계 정복을 도왔다. 이 같은 행렬을 웅장한 곡으로 완결 지은 곡이 ‘아이엠(I AM)’이다. 정직한 짝수 박자의 행진곡 위에서 공항 활주로를 런웨이 삼아 걸어가던 ‘아이엠’은 당당한 태도로 완성한 블록버스터 엔터테인먼트로의 K팝 결정체였다.

아이브가 보여 주고 들려준 자아 확신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매체부터 소속사까지 가져온 개념은 ‘세대론’이었다.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 SNS를 중심으로 급속히 미디어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른 Z세대. 그 Z세대의 대표주자가 바로 아이브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K팝 시장은 아이브 등장 전까지 Z세대 수요에 관해 명확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빌리 아일리시,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인기를 끌어모으며 슈퍼스타로 거듭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어린 나이에 집중하거나 음악장르를 가져오는 정도의 형식적인 적용에 그쳤다. Z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룹의 첫번째 EP ‘아이브 마인(I’VE MINE)’은 그래서 중요한 작품이었다. ‘나’에 초점을 두는 부분은 여전했으나 ‘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며 공감의 폭을 넓혔다.

‘감히’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작사가 서지음의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에서 서로 다른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낸 아이브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의 노랫말 ‘이더 웨이(Either way)’에서 ‘가끔은 이해조차 안 되는 시선들 억울하기도 하지만 오해가 만든 수많은 나와 얘기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제 대중은 아이브의 무대 뒤 아이브라는 그룹을 만들어 가는 멤버 개인의 서사에 귀 기울이게 됐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과 프로젝트그룹 아이즈원 출신 장원영·안유진이 화려한 무대 스포트라이트 아래 수많은 루머와 가십에 시달리며 거듭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는 고충을 바라봤다. 프로젝트그룹 출신 연습생의 정식 데뷔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타개하기 위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가을, 리즈, 레이, 이서의 노력에 주목했다. 아이브의 ‘나’ 서사가 ‘우리’의 서사로 뻗어 나가는 순간이었다.

Z세대의 공감은 세련된 스타일과 음악으로부터 얻어지지 않았다. 디지털 환경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태어나 SNS로 24시간 내내 상대의 소식을 접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를 하며 결국 쪼그라드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순간, 입은 웃고 있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깊은 우울을 위로받는 순간이 필요했다.

장원영의 긍정적 사고로부터 등장한 ‘럭키비키’가 유행어로 거듭난 까닭이기도 하다. 단순히 매사를 낙관하는 태도가 아니라 갖은 시행착오를 거쳐 혼자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타인의 낙인 찍기를 굳은 믿음으로 돌파하는 긍정의 힘이다.

아이브는 지난 3일 새 앨범 ‘아이브 엠파시’를 발표했다. 그룹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번 작품이 ‘나’를 넘어 ‘우리’를 이야기함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내면의 성숙과 더불어 외면적 성장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데뷔 2년 만에 월드투어를 섭렵한 아이브는 지난해 미국 롤라팔루자와 일본 서머소닉 페스티벌 등 커다란 무대에 오르며 그룹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사랑, 이해, 공감 등 단단한 자기애를 서로 다른 사회구성원들 간 소통과 이해로 연결 짓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납득이 간다.

앞서 언급한 ‘레블 하트’의 당당한 등장과 장원영이 작사에 참여한 타이틀곡 ‘애티튜드(ATTITUDE)’에서 ‘운명이 장난을 걸어오면 놀아 줘야지 뭐 어쩌겠어’ ‘그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솔직히 내가 난 맘에 들어’라고 노래하는 멤버들의 태도에서는 신인 걸그룹을 넘어 궤도에 오른 K팝 대세 걸그룹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브 엠파시’는 이 안정감으로 인해 그룹에 새로운 숙제를 안긴다. 글로벌 무대와 콘서트를 의식한 듯 노래의 지향점이 크고 넓은데, 캐치한 멜로디와 인상적인 포인트가 많았던 이전 히트곡의 전략을 답습하는 안전한 선택으로 인해 곡 단위 매력이 떨어진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를 샘플링했던 ‘애프터 라이크’의 작곡가 라이언 전이 수잔 베가의 ‘톰스 디너(Tom’s Diner)’를 샘플링한 ‘애티튜드’는 가사만큼의 감동이 덜하다. 강렬한 전자기타를 활용한 ‘레블 하트’와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I Wanna Dance With Somebody)’를 재해석한 ‘유 워너 크라이(You Wanna Cry)’ 정도가 귀에 들어온다. ‘아이브 엠파시’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하는 아이브는 큰 생각을 더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음악의 확장 필요성을 마주하고 있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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