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보험금을 노리고 친아버지를 살해한 존속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김신혜 씨가 얼마 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4년 만에 출소했다.
경찰은 당시 김씨의 아버지 살해 동기에 관해 보험금과 함께 김씨 및 김씨의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씨가 범행 및 동기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재판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적도 없고, 아버지가 성추행한 사실도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검찰에서도, 법원에서도 김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대로 유죄가 확정됐다.
변호사로서 사건의 전모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오래전부터 김씨의 재심을 도운 사람·단체들이 정리한 자료가 상당해 경찰의 수사·재판 경위, 재심까지 이르게 된 경위·재심 사유 등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까웠다. 김씨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쉽게 말해 “유죄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김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확보했던 그의 자백과 노트 등 압수물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 당시 김씨의 피의자신문조서에 그의 자백을 허위로 기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자백이 기재돼 있다고 하더라도 김씨가 재판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면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사건의 경우 김씨가 재판에서 자백을 부인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유죄의 증거로 쓰기 어렵다. 설령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김씨의 자백이 유죄의 증거로 인정되더라도 자백만으론 유죄를 인정할 수 없기에 범죄사실 입증을 보강할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그의 노트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를 압수했는데,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절차적 위법성이 발견돼 위법수집증거가 됐다.
김씨의 자백은 김씨가 부인했으므로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고,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더라도 보강증거가 위법수집증거가 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행 동기인 보험금도 김씨가 수령하기 어려웠고, 김씨 및 김씨의 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근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무죄라는 결론에 이른다.
23세에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무기수가 됐던 김씨는 24년이 지나 남은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24년의 수형생활과 법정싸움으로 지쳤는지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의 극심한 망상에 시달리며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이 필자에게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과 절차를 따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에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영장주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게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원칙 등이 명시돼 있다. 이들은 예외가 용납되지 않는 형사절차의 대원칙이자 기본원리다. 국가의 막강한 공권력 행사가 국민에게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견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씨의 사건에서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만약 어느 하나라도 지켜졌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김씨에게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악마와 같이 보였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악마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김씨가 진범이 틀림없다는 그릇된 확신을 갖게 된 경찰관들이 수사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과 절차를 가볍게 치부하거나 무시해 발생한 일은 아니었을까. 어느 쪽이든 김씨가 본 피해는 동일하다는 점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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