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40. 2015년 유라시아친선특급 ⑤
TRS 종착역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
왕복 16차로 크기에 압도당해
2차대전 승전 행사 열린 붉은광장
테트리스 게임 배경 성 바실리 성당
아르바트 ‘추모의 벽’ 젊은이들 북적
율리 김·류드밀라 남·빅토르 안 등
러시아 속 한국인 자랑스러워
드디어 러시아 모스크바다. 2015년 7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12일에 걸쳐 무려 9288㎞의 길을 달려온 끝에 시베리아횡단열차(TRS)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한 것이다.
흔히들 말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정신이라면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이라고. 그렇듯 모스크바는 인구 1200만 명, 면적 2400㎢(서울의 4배)에 이르는 유럽 최대 도시다. 역을 나서자 도로 크기에 압도당했다. 왕복 16차로다. “아, 여기가 진짜 러시아구나.” 감탄사가 나왔다.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식 보여주기 전시 행정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도 들었다.
간단히 여장을 풀고 도시 순회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붉은광장 인근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의 불길이 타오르는 이 묘는 1941년 모스크바 전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해 10월, 독일군이 모스크바 교외 수십㎞ 밖까지 접근해 오면서 모스크바는 함락 위기에 빠졌다. 모든 상황이 암담했지만 소련 국민과 모스크바 시민들은 끝까지 조국과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성인 남성들은 자진 입대했고, 도시에 남은 여성과 소년들은 참호를 파거나 서치라이트를 돌리며 모스크바를 하나의 거대한 요새처럼 만들었다. 마치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민·관·군이 합심한 것처럼. 치열한 공방 끝에 독일군은 물러났다. 독일군의 무패 신화가 깨짐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운명의 추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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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돌려 붉은광장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지난 5월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8일을 승전일로 본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치가 옛 소련군에 다시 한번 항복을 서명한 9일을 승전일로 기념하고 있다.
성 바실리 성당과 러시아 국립역사박물관, 레닌 묘, 크렘린궁으로 통하는 4개의 망루가 이곳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1990년 크렘린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혹시 다들 알고 있으려나? 성 바실리 성당이 예전 게임 테트리스의 배경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스크바에 도착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곳 야로슬라블역에는 세계 최장 거리 직통노선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평양으로 가는 국제열차다. 거리는 1만㎞가 넘는다. 이 기록은 경신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이 된다면 서울로, 부산으로, 목포로 열차 거리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통일 이전에 남북철도가 연결되더라도 언제든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하나 더, 러시아의 역 이름은 도착지 이름을 따서 짓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역의 이름은 모스크바역,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에 있는 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역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남북철도가 연결된다면 야로슬라블역의 이름도 서울역 또는 카레이스키역으로 바뀔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반드시 그러한 날이 오기를 살며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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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7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장정을 시작한 이래 처음 맞이하는 비다. 그동안 내리쬐는 햇빛과 더위로 인한 고생 때문인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이날 일정은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를 해소하고자 그랬는지 조금은 여유 있게 짜였다. 먼저 들른 곳은 모스크바박물관. 무릇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설계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법. 그간 열차에서 받은 강의 덕분인지 모두가 여기저기 다니며 관심 있게 살펴봤다.
또 다른 명소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찾았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차이콥스키가 수도원을 둘러싼 호수에서 영감을 얻어 백조의 호수를 작곡했다는 사연으로 유명한 곳.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에게는 애국지사 백추(白秋) 김규면(金圭冕·1880~1969) 선생이 묻힌 곳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노보데비치에 묻힌 사람치고 유명 인사가 아닌 인물이 없다. 러시아 문학의 거두 니콜라이 고골과 안톤 체호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외무장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묘역 조성 초기부터 일반인 매장이 금지됐던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히기 위해서는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모두 2만6000여 명이 안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로 말하자면 국립묘지 격이다. 따라서 백추가 옛 소련 지도층의 무덤인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은 소련 당국도 그의 항일투쟁 업적을 높이 평가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출입을 통제해 직접 그의 묘소를 방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묘소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 뿐이다.
이어 방문한 곳은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다. 여기에는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가 찾는 추모의 벽이 있다.
아직도 추종자들의 꽃과 담배가 끊이지 않는 이 공간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 가수 빅토르 최를 위한 장소다. 그는 1962년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빅토르 최의 인기는 러시아에서만큼은 비틀스에 버금갔다고 한다. 그의 노래에는 유독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가사가 많다. 그가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민중의 갈망이 가장 강렬한 시기였기에 많은 젊은이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1990년 8월 15일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불과 스물여덟 살. 27일 친선특급 참가자들이 찾은 아르바트의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은 한눈에 봐도 주변 건물과 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 곳이 재개발 지역이어서 다 허무는데, 추모의 벽만은 그를 기리는 팬들이 모여 결사적으로 저지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추모의 벽만 제외하고 일대 건물은 모두 새 모습으로 바뀌었다.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쓴 빅토르 안(안현수)도 그에게서 이름을 땄다. 이외에 고려인으로 러시아 대표 음유시인이 된 율리 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류드밀라 남 등 유명인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러시아 속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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