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한국인은 왜 이러나’ 하는 단점으로 지적되던 것이 이제는 장점화, 한국 고유의 문화요소로 간주되는 까닭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과거에 정장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이 하나의 사회적 지위였다. 옷도 그에 어울리게 입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선 한참 더 노력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때 남학생들은 싱글 양복을 입는 게 대세였고, 여학생은 나름의 원피스·투피스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걸 본 외국인들은 한국 대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사치를 한다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왜 학생들이 비싼 옷을 입고 학교를 다니냐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어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외모를 잘 가꾸고, 패션 센스도 뛰어나다고 얘기한다. 해외에 나가 보면 한국인이 유난히 옷을 잘 입기는 한다. 옛 중국 문헌에도 고려인들이 옷을 잘 입고 가무를 즐긴다는 얘기가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성향이 요즘 생긴 건 아닌 모양이다.
‘빨리빨리 문화’도 새롭게 조명된다. 예전의 빨리빨리 문화는 조악한 품질을 생산하는 한국 제조업의 고질병이었다. 애초에 제공했던 샘플과 한참 차이 나는 품질도 문제였고, 무리한 수주와 생산을 했던 모든 원인이 빨리빨리였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산은 그저 그런 제품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제품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 보기 드문 빠른 경제성장이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전자, 선박, 요즘 핫한 방위산업이 모두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빨리빨리와 완벽함은 어쩌면 대척관계에 있다. 제품이나 일 모두 어느 단계에 이르면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 하는 포인트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이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데, 요즘 빨리빨리가 핫한 걸 보면 이 성향을 좀 더 즐길 모양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융통성이다. 일본의 특징 중 하나가 매뉴얼 문화다. 편의점에서 가게 유리창 닦는 법이 매뉴얼화돼 있는 걸 봤다. 만일 이걸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그냥 아침에 출근해 유리창 닦기, 청소하기 등이 한 줄로 표기될 뿐이다. 일본에서처럼 유리창을 닦을 때 ‘처음 거품을 전체에 바르고,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닦은 뒤 마지막 아래를 가로로 문질러 거품을 깨끗하게 제거한다’고 써 놓으면 몇 사람이나 이 매뉴얼을 따를지 궁금하다.
초기 우리 제조업의 기술 지도를 한 일본인들이 많이 한 불평 중 하나가 한국 기술자들은 시킨 대로,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은 뽑아내는데, 어떻게 했는지 시킨 사람이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좋게 얘기하면 일을 빨리 배우고 더 편한 방법을 새로 알아내는 거지만, 나쁘게 보면 이 기술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후임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고, 이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발전을 못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융통성 문화가 빨리빨리 문화와 접목돼 IT나 인공지능(AI) 업종에서 치고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상전(桑田·뽕나무밭)이 벽해(碧海·푸른 바다)가 된 것이다.
민족성이나 문화적 성향도 때를 만나야 날개를 다는 것임을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보면서 느낀다. 일종의 운이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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