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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쑹덜쑹 몸에 흰 눈썹 휘날리는 호랑이 위로 놀란 까치 한 쌍 … 나쁜 기운 막고 기쁜 소식 알리네

입력 2025. 01. 24   16:06
업데이트 2025. 01. 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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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옛 그림 속 숨은 이야기 ② 작호도(鵲虎圖)

사납지만 어딘가 귀여운 호랑이
무신의 용감함, 대인·군자의 표상
까치와 어우러진 그림 한·중서 유행
줄무늬 문양, 도자기·벼루 새기고
그림 자체가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작호도(조선, 종이에 채색, 세로 134.6×가로 80.6cm).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작호도(조선, 종이에 채색, 세로 134.6×가로 80.6cm).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납지만 귀엽게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온다. 소나무 기둥에 뒷발 하나를 턱 올리고, 오른쪽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한다. 한발이 넘는 꼬리는 소나무 높이와 맞먹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까치 두 마리는 호랑이의 등장에 놀란 듯 깍깍대며 주변을 경계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아 같은 앞다리 
전동(천둥) 같은 뒷다리 쇠 낫 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잔디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르 헛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판소리 ‘수궁가 중(中) 범 내려온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자라가 호생원 ‘범’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의 모습에 흥겨운 판소리 구절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사나운 호랑이 표정과 대조적으로 그림 밖 감상자는 빙그레 웃게 된다.

이 작품은 ‘까치와 호랑이’ ‘호작도(虎鵲圖)’ 또는 ‘작호도(鵲虎圖)’라고 부르는 그림이다. 우리가 흔히 ‘민화(民畵)’라고 부르는데, 작가를 알 수 없는 조선 후기 시장에서 제작한 그림이다. 이런 그림들은 18세기 후반 궁중의 그림 업무를 담당하는 도화서(圖?署)가 있던 한양의 광통교(廣通橋) 근처(현재 을지로 입구 부근)에 형성된 지전(紙廛)이나 서화사(書?肆)라는 전문 점포를 통해 쉽게 살 수 있었다.

당시 도화서 화원들은 녹봉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적인 그림 주문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광통교 근처에 미술시장이 형성됐다. 이곳에서 궁중에서 선호하는 회화 주제를 비롯해 사군자, 산수화, 구운몽도, 삼국지도, 액막이용 세화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그림을 판매했다. 이런 점포에는 화원들도 활동했지만, 서민층의 수요에 맞춘 저렴한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도 대거 등장했다. 이들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팔거나, 밑그림을 만들어 대량으로 복제했다.

다시 그림을 보자.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시원을 알려주는 단군신화와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만년 주연배우다. 연기 범위가 매우 넓다. 영리하고 사악하며, 어리석고, 참을성 없고, 심지어 산신(山神)과 인간을 수호하는 동물로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에는 용감함을 상징하는 무신의 흉배 문양으로 사용됐고, 유교적 인간 완성체인 대인(大人)과 군자(君子)의 표상을 상징했다. 아마도 호랑이를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겨 사람들이 다양한 성격을 부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림 속 호랑이 얼굴을 보자. 등·꼬리·발은 호랑이 줄무늬인데, 이마와 턱 아래는 동그란 털 무늬로 그려 표범의 문양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에는 무늬가 호랑이의 줄무늬와 표범의 동그란 무늬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범’이란 명칭에 호(虎)와 표(彪)를 함께 썼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까치와 호랑이’ 그림의 시작은 중국 원나라 때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에서는 ‘유호도(乳虎圖)’고 해서 소나무 위에는 까치가, 아래에는 호랑이 어미와 새끼가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당시 이 그림은 맹수 호랑이의 부모와 자식 간 깊은 사랑에 대한 교훈을 담았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의 ‘호도(虎圖)’는 청나라 황실의 소장품이다. 얼굴 표현이 호랑이의 사실적 특성을 담고 있고, 배경에는 폭포를 그려 깊은 산중임을 보여준다. 소나무 위에는 새 한 쌍이 있다. 몸과 꼬리깃이 푸른 빛으로 중국에서 서식하는 ‘붉은부리 파랑까치(紅嘴藍鵲)’로 보인다.

호랑이가 산에서 나오는 ‘출산호(出山虎)’ 유형의 그림은 중국의 오래된 문학이론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의 첫 편인 ‘원도(圓道)’에서 ‘병울지자(炳蔚之姿)’라는 표현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 ‘병울’은 대인군자가 자신을 가꾸고 노력해 훌륭한 문채(文彩)를 이룬 것을 범의 털갈이에 빗댔다. 책에 따르면 호랑이와 표범은 가을 남산의 안개 속에 몸을 감추고 1주일 동안 먹지 않으며 털갈이해 빛나고 융성한 모습으로 바뀐다고 한다.

방금 산에서 나온 새롭게 변한 호랑이를 까치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예로부터 까치는 길조를 알린다는 ‘희작(喜鵲)’으로 썼고, 중국어의 범을 뜻하는 ‘표(豹)’의 발음이 ‘알린다’는 의미의 ‘보(報)’와 비슷해 소리를 빌려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러니까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나오는 그림은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 황실용 소장 그림과 조선의 그림을 비교하면 호랑이의 눈썹에서 큰 차이가 난다. 조선 호랑이는 눈두덩이를 크고 하얗게 그리고, 흰 눈썹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이는 백액호(白額虎·눈썹이 하얀 호랑이)라 하여 집안에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동물을 상징한다.

중국에서 본래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에서 확장돼, 조선에서는 호랑이가 인월(寅月·음력 정월)을 뜻하기 때문에 정월(正月)과 벽사(?邪)를 상징하는 뜻과 결합했다. 유독 조선에서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다양한 계층에서 즐겼다. 문양이 도자기나 벼루에도 그려지고, 심지어 그림 자체가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수입된 문화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면모를 관찰할 수 있다.

까치의 설날이 가고, 우리 설날이 왔다. 새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닿기를!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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