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톡톡’
마음의 문 열고 똑똑 잘 즐기고 계시죠
프랑스 작가 로랑 바피의 대표작…강박증 환자 6인의 좌충우돌 코믹 연극
임기홍·김아영·루나 등 배우 열연 돋보여…새해 웃음으로 시작하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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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들어서자 갓 구운 크루아상처럼 고소한 웃음의 향기가 났다. 새해 첫 관람작은 연극 ‘톡톡(TOC TOC)’. 프랑스 코미디의 대가로 불리는 로랑 바피의 대표작으로 ‘톡톡’은 그에게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안겼다.
뚜렛증후군, 계산벽, 질병공포증, 확인강박증, 동어반복증, 대칭집착증을 가진 여섯 명의 환자가 세계적인 명의(그래서 늘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스텐 박사의 병원 대기실에 몰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런 해외 코미디물을 들여올 때는 그 나라 특유의 웃음 감성을 한국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지만, 톡톡은 토종꿀을 바른 바게트처럼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X발, 개자식!” 욕설을 멈추지 못하는 뚜렛증후군 환자 프레드, “13개월 반, 410일, 9840시간….” 모든 것을 계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계산벽 환자 뱅상, “두 분 손에 세균이 있어요!” 세균 공포에 시달리는 질병공포증 환자 블랑슈, “하느님 아버지, 우리 집 가스, 수도, 전기를 다 끄지 않고 나왔으면 어떡하죠?” 확인강박증 환자 마리, “제 이름은 릴리예요. 제 이름은 릴리예요.”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동어반복증 환자 릴리,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대칭이 아닌 걸 보고 그냥 넘어가는지.” 대칭에 집착하는 대칭집착증 환자 밥이 차례로 등장한다.
환자들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만큼이나 오지 않는 스텐 박사를 지루하게 기다리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서로의 강박증을 이해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지혜를 짜낸다.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웃음과 재미를 유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 강박증’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애써 ‘자발적 그룹치료’를 시도한 이들의 노력은 쉽게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스텐 박사를 만나 치료받을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욕설을 내뱉는 프레드와 그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며 십자가를 들이대는 마리, 느물느물한 택시 기사 뱅상과 그의 터치에 기겁하며 소독약을 사방에 뿌려대는 블랑슈의 조합은 이 작품 최고의 폭소버튼이다.
총알 랩과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뱅상의 숫자 나열도 볼거리 중 하나. ‘인간계산기’인 그는 대기실에 있는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해 큰 웃음을 선사한다.
시즌마다 기량이 뛰어난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톡톡’은 이번 시즌에서도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임기홍은 코믹연기는 물론 몸을 참 잘 쓰는(심지어 눈동자조차!)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뚜렛증후군 환자 프레드를 완벽하게 소화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민망한 욕설을 외치지만 어딘지 귀여운 캐릭터다. 같은 역을 맡은 서현철의 연기도 궁금하다.
뮤지컬 배우 김대종도 코미디에 친숙한 배우. 개인적으로 ‘빅벨 선생’으로 부르곤 하는데, 연극 무대에서 보긴 처음이다. 이 작품은 뱅상이 매우 부지런해야 하는데, 김대종이 노련하게 잘 살렸다.
김유진은 아마도 이날 캐스팅 중 유일한 ‘비(非) 뮤지컬 배우’일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김유진의 연기를 무대에서 보았다. 작품과 연기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배우다. 대사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모두 진심을 담고 있다.
어쩐 일인지 지난해부터 김아영이 출연하는 작품을 몇 편째 보고 있다. 개성이 뚜렷한 배우로 ‘캐릭터의 김아영화(化)’에 능한 배우다. 확인강박증 마리 역시 완벽하게 김아영화돼 있다.
릴리 역의 루나는 연기가 좋아서 꽤 놀랐다. 걸그룹 f(x) 메인보컬 출신으로 2011년 뮤지컬 ‘코요테 어글리’에서 주인공 바이올렛을 맡은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당시 루나의 출연은 꽤 언론에서 화제가 됐고, 메인 포스터 역시 루나가 등장하고 있었다.
‘인기 아이돌의 1회성 뮤지컬 탐방’ 정도로 여겼던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는데, 사실 루나는 이후 ‘레베카’ ‘더라스트키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맘마미아’ ‘그날들’ 등 꽤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관객들은 연극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루나는 완벽하게 극을 투과하고 있었다.
새해를 맑고 담백한 웃음과 함께 시작하고 싶다면, 강제로라도 팔을 잡아끌어 객석에 앉혀다 놓고 싶은 작품이다. 마지막 반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지만, 절대 말해줄 수는 없다.
이 작품의 제목 ‘톡톡’은 스페인어로 강박증을 의미하는 ‘Trastorno Obsesivo Compulsivo’의 약자이면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톡톡은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강박증 환자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공간으로 타인을 들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관객의 마음을 노크한다. “똑똑, 즐기고 계시죠?” 사진 제공=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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