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끝자락은 계엄과 탄핵,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등으로 얼룩져 연말의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을사년 새해가 부디 밝고 희망찬 일로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특히 어린 아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생애 첫 가족여행 중 사고를 당한, 아기를 포함한 일가족의 소식은 듣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찢어졌다. 이런 비극을 대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속보로 이어지는 뉴스 중 하나가 ‘잘못 봤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악스러웠다. “무안공항 유가족들만 횡재네요” “보상금을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할 듯”이라는 글과 말이 온라인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글에 ‘좋아요’를 눌러 동조하는 이도 다수라고 한다. 아무리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경찰이 악플러들을 수사하고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나마 안도했다. 적어도 더 심한 말이 나돌긴 어려울 것이다. 경찰은 여객기 사고와 관련된 100여 건의 사이버 범죄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중 몇 명은 검거됐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을까.
이 같은 악플이 희생자·유가족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에 해당하거나 사실이더라도 비방 목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에 해당한다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경우 최대 7년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 다만 익명성을 이용한 범죄이므로 검거와 처벌이 쉽지 않아 수사에 애를 먹기 십상이다.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범죄는 사법부도 처벌 범위와 수위를 확장해 일벌백계하려는 추세다. 최근 대법원은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이태원 사고 여성 사망자를 대상으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 메시지를 입력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해당 메시지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20대 여성 희생자의 신체 부위 형상과 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시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시신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시신을 오욕하거나 시간(屍姦)을 연상하는 내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며 “추모·애도해야 할 사망자의 유체를 성적 쾌락의 대상과 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비하해 불법적·반사회적인 성적 행위를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저속·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 인격체로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고,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채팅창에 메시지를 입력해 음란한 문언을 전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음란물의 범위가 점점 좁아져 가는 최근 흐름과 다소 달라 보이는 법원의 판단인데, 판결문에서 우리 법원이 익명성에 숨어 비인간적인 악성댓글을 유포하는 행위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엄단의 의지를 갖고 있음이 엿보인다. 이러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노력이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유는 책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지금 우리의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