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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 위로의 음악

입력 2025. 01. 14   16:24
업데이트 2025. 01. 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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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틱틱붐’

째깍째깍 초침소리 쿵쾅쿵쾅 심장소리
우리 마음속 시계소리가 점점 커진다

‘렌트’ 작곡가 조너선 라슨
자전적 이야기 담은 작품
서른 앞두고 방황하는 주인공
결국 꿈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
‘30/90’ 불안·초조 폭발적 표현
‘그린 그린 드레스’ 중독성 짙어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 이해준.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 이해준.



30대 문턱에서 방황하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의 숨은 뜨거웠다.

사람의 심장은 언제 가장 크게 울릴까.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에 쿵쾅쿵쾅 심장이 동기화한다. 적어도 뮤지컬 ‘틱틱붐’에서는 주인공이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순간이다. 이 ‘?킹한’ 이야기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예술가 존의 일상을 빌미로 우리 마음속 시계 소리를 증폭시킨다.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주인공 이름이 존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1990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스타 작곡가를 꿈꾸는 존은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다. 낮에는 소호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밤에는 곡 작업에 몰두하지만 꿈은 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댄서가 되고 싶은 여자친구 수잔은 뉴욕 생활에 지쳐 존과 함께 도시를 떠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존의 절친 마이클은 한때 배우가 꿈이었지만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한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며 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존은 마이클의 새 차와 아파트를 보며 자신의 초라한 현실에 좌절하고 점점 불안감에 휩싸인다.

‘렌트’처럼 록뮤지컬이지만 ‘틱틱붐’은 록의 강렬함보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좀 더 강조돼 있다. 이른바 렌트의 ‘순한 맛’ 버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록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틱틱붐’ 공연의 한 장면.
뮤지컬 ‘틱틱붐’ 공연의 한 장면.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역을 맡은 배우 배두훈.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역을 맡은 배우 배두훈.

 

뮤지컬 ‘틱틱붐’의 한 장면.
뮤지컬 ‘틱틱붐’의 한 장면.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 장지후와 앙상블.
뮤지컬 ‘틱틱붐’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 장지후와 앙상블.




‘나는 서른 살 때 어떤 인간이었을까.’ 틱틱붐은 서른 살을 넘긴 사람들에게도 각별한 공감을 선물한다. 20대의 젊음과 패기만으로 느낄 수 없는, 30대 언저리의 현실적인 고민과 불안함을 존이라는 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극장을 나서는 길, 많은 관객이 가느다란 눈을 하고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번 시즌 틱틱붐은 처음으로 앙상블을 추가해 8인극으로 선보였다. 앙상블은 존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처럼 때로는 친구, 동료, 적, 행인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무대를 풍성하게 만든다.

‘틱틱붐’은 ‘렌트’ 못지않게 관객의 귀와 마음을 잡아채는 넘버들을 보유하고 있다. ‘30/90’은 존의 불안과 초조를 폭발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록 뮤지컬만의 독보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애곡은 존과 수잔의 ‘그린 그린 드레스’로, ‘틱틱붐’ 넘버 중에서 가장 중독성이 짙은 멜로디를 갖고 있다.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역시 존이 워크숍에서 자신의 작품 ‘슈퍼비아’를 선보이는 장면이 아닐까. 장장 8년 동안 공들여 제작한 작품을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순간으로, 존의 열정과 땀에 젖은 긴장감이 손에 잡힐 듯하다.

존이 스티븐 손드하임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장면도 좋다. 손드하임은 존이 가장 존경하는 뮤지컬 작곡가이자 ‘틱틱붐’ 스토리텔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여러분이 아시는 그 손드하임 맞습니다). 존은 손드하임 격려에 힘입어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장지후는 대선배 류정한을 떠올리게 하는 개성적인 외모와 시원시원한 노래로 존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거의 퇴장 없이 무대를 지키며 다량의 넘버와 대사를 소화하는 에너지는 놀라울 정도다. 마이클 역의 김대웅은 처음 봤는데, 가사 전달력이 압권이었다. 마치 헤드셋 마이크를 낀 일타강사를 보는 듯했다.

수잔 역의 방민아는 걸그룹(걸스데이) 멤버라는 선입견을 깨고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걸그룹 출신 배우 다수에게서 발견되는 마른 몸매여서 무대에서 조금 가냘파 보이지만 의외로 빵을 밥보다 잘 먹어 별명이 ‘빵민아’라고 한다.

‘틱틱붐’은 꿈과 현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한 꽤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존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간다. 존의 삶은 우리 삶의 어느 지점과 새끼줄처럼 꼬여 있다. 째깍째깍, 심장 터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희열과 초조함을 동시에 움켜쥔 채 멍하니 서 있던 시절을 당신도 분명 겪었거나, 겪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현실을 새기고 있다. 그 차가운 시간을 누구보다 뜨겁게 붙잡고 싶었기에 라슨은 기어이 ‘렌트’의 ‘시즌스 오브 러브’를 쓸 수밖에 없었나 보다. 사진 제공=신시컴퍼니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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