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 보이넥스트도어
지코가 만든 보이그룹 데뷔부터 화제
격렬한 안무에도 안정적 라이브 소화
이름처럼 이웃 10대 같은 감성 풀어내
“추억 팔아 곡이나 쓰는 건 딱 싫다”는
신곡 ‘오늘만 I LOVE YOU’ 파죽지세
멜론 실시간 차트 1위·톱100 5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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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의 인기곡은 대부분 지난해의 노래들이다. 보통 새해 첫 주에는 복귀 스케줄을 잘 잡지 않는다. 인기 최절정의 2013년 소녀시대가 네 번째 정규 앨범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를 발표한 것이 이례적인 사례다. 또한 올해는 한 해의 끝에 믿을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한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 위로의 뜻을 전한다.
여러모로 황량한 연초의 가요계에서 주목받는 곡이 있다. 보이그룹 보이넥스트도어의 신곡 ‘오늘만 I LOVE YOU’다. 지난 6일 공개된 신곡인데,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의 실시간 차트 1위, 톱100 차트 5위권 내에 진입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음악 앱 유튜브 뮤직에서도 인기곡 16위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공개 5일 만에 3000만 회를 넘었다.
‘오늘만 I LOVE YOU’는 2024년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노래의 경향을 대거 흡수하여 3분 이내의 짧은 호흡으로 풀어냈다. 지난 한 해 데이식스, 실리카겔과 같은 인기 그룹이 견인한 밴드 포맷의 록 음악을 바탕에 두고 있다. ‘오늘만 I LOVE YOU, 아이시테루(愛してる)’라는 후렴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QWER과 (여자)아이들이 성공한 일본 밴드들의 인기 유행도 겨냥했다. 새하얀 설원 위 소년 소녀의 모습, ‘더는 기타 한 번도 들지 못하고’나 ‘추억 팔아서 곡이나 쓰는 건 딱 죽기보다 싫은데’에서 의도한 젊은 창작가의 면모는 2024년 초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라이즈의 ‘러브 119’를 연상케 한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내놓은 투어스, 가상 아이돌의 한계를 극복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은 플레이브와 함께 2024년보다 친근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던 보이그룹의 성공 사례들이 잘 정돈된 곡이다. 인기 있는 요소만 골라내 놓았으니 실패할 가능성도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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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넥스트도어는 2023년 데뷔한 6인조 그룹이다. 그룹 블락비 출신으로 데뷔해 솔로 음악가로 입지를 다진 래퍼 지코가 설립한 기획사 KOZ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지코가 공들여 직접 제작하고 프로듀싱한 그룹으로,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았기에 많은 팬은 과거 블락비가 선보였던 박력 넘치는 힙합 기반 음악을 상상했다. 재미있게도 그룹 이름은 ‘옆집 사는 소년들’이었고, 데뷔 앨범 ‘후(WHO!)’에서 들려준 음악도 마찬가지로 정말 일상에서 만날 법한 이웃 십대들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돌아버리겠다’ ‘원 앤드 온리’ ‘세레나데’로 이어지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 구성을 통해 해맑게 인사를 건넨 이들은 재기발랄하고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던 청소년기를 풀어내며 팀의 개성을 확립해 나갔다.
그렇다고 지코의 노하우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작곡가 팝타임과의 콤비 플레이로 만들어내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장르 구분 없이 자유분방하고 자신감에 가득 찬 소년들의 일상을 그린다. 멤버 전원이 핸드 마이크를 손에 들고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며 안정적인 라이브를 들려준다. 빠르게 나아가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소심한 일탈을 거창하게 그려내는 ‘부모님 관람불가’ 같은 악동 찬가가 있는가 하면 ‘내 동갑내기 친구들은 대학, 재수, 취업 얘기들로만 가득하고’라며 푸념하는 ‘스물’과 ‘별거 아냐 주눅 들지 좀 말자’라고 격려하는 ‘콜 미’처럼 섬세하게 또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도 있다. 성과도 있다. 가장 최근 발표해 발매 당일 6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19.99’ 앨범까지 총 세 장의 미니앨범을 통해 데뷔 112일 만에 빌보드200 차트 진입, 일본 정식 데뷔 전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대 들어 수많은 보이그룹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앨범 판매량만 보면 든든하다. 인기 보이그룹의 경우 백만 장은 기본, 수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발매 단 일주일 만에 기록한다. K팝의 역사와 함께한 보이그룹의 굳건한 팬덤은 여전히 기획사를 지탱하는 주요한 존재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인기는 그보다 덜하다. 2023년 앨범 100만 장 이상 판매 기록을 가진 세븐틴과 스트레이키즈, 제로베이스원의 음악을 선뜻 댈 수 있는가. 세계를 활보하며 거대한 경기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명실상부 K팝 최고의 인기 그룹들임에도 현실에서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대답이 더 많다.
보이그룹의 어려움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긴 시간 K팝 역사의 중추에 자리 잡고 있던 탓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어렵다. 기획 과정에서 수많은 선배 그룹의 발자취와 표절을 피해 새로운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인구 감소로 인한 연습생 수급에도 어려움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이그룹의 소비가 K팝 가운데서도 가장 팬덤 중심적 산업 논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보이그룹은 과거부터 깊은 취향을 파고들어 가는 형태로 나아갔다. 거대한 규모의 팬덤 산업에 가장 빠르게 발맞춰 전략을 만들어왔다. 노래보다는 퍼포먼스, 컴백 때마다 달라지는 콘셉트에 집중했다. 그룹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요소와 역사를 꿰뚫고 있는 팬덤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K팝 시장에 큰 관심이 없는 소비자에게는 접근 및 이해 난도가 나날이 높아만 갔다. 체감과 공감의 가능성은 나날이 줄어만 갔다.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재미있게도 그들의 구원 역시 깊은 취향으로부터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화 소비는 파편화되었다. 소셜미디어의 보편화로 각자가 자신의 미디어를 갖게 된 오늘날,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끔 만들고 다른 취향과의 공유를 끊어버린다. 많은 이들이 대중적 취향, 대중적 영향을 강조하지만, 대중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물으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충성해 온 보이그룹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사랑 없는 학창물, 음악을 만드는 수더분한 청년들,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옆집 소년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보이넥스트도어의 ‘오늘만 I LOVE YOU’는 그래서 흥미롭다. 사진=KOZ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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