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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냉장고 주인공 해병대원 선행에 국민들 감동

입력 2025. 01. 09   16:11
업데이트 2025. 01. 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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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 국방일보 - 1998년 1월 7일 자 1면

 



최강한파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 무렵이면 늘 찾아오는 추위지만 유난히도 매서웠던 때가 생각납니다. 바로 27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맞이했던 겨울인데요.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직자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때 한 해병대원의 선행이 전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습니다.

당시 지상파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할머니를 도와 ‘양심냉장고’ 주인공으로 선정됐던 해병대2사단 권태길 상병 덕분입니다. ‘양심냉장고’는 양심을 지키고 선행을 실천한 시민들에게 냉장고를 지급했던 인기 코너였습니다. 1998년 1월 4일 방영된 ‘영등포역에서 어르신 짐 들어 드리기’ 편에선 10시간 가까운 기다림에도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요. 제작진이 철수하기 5분 전, 권 상병의 선행이 포착됐죠.

권 상병은 IMF 사태가 터졌던 해인 1997년 12월 24일, 5000㎞ 무사고 운전병으로 선정돼 특별휴가를 받았는데요. 고향인 경남 마산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서울 영등포역에 갔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는 할머니를 발견합니다. 갈 길 바쁜 시민들은 할머니를 외면했지만, 권 상병은 주저 없이 짐을 들어 드렸죠. 이 선행이 카메라에 포착됐고, ‘양심냉장고’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1998년 1월 7일 자 국방일보 1면에는 권 상병에게 보낸 당시 김동진 국방부 장관의 격려서신이 보도됐습니다.

김 장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권 상병이 행동으로 실천했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참군인의 모습을 감명 깊게 심어 줘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으며, 전 장병의 귀감이 됐다”고 치하했는데요. 이어 “권 상병의 선행에 무한한 찬사와 신뢰를 보내며 앞으로도 믿음 직한 무적 해병대 용사로서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선행 못지않게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킨 것은 권 상병의 인터뷰였는데요.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로서, 청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부상으로 받은 냉장고를 할머니께 드리고 싶다”고 의젓하게 답했죠.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자 진행자였던 이경규 씨의 제안으로 냉장고는 권 상병의 부대에 전달됩니다.

방송 이후 권 상병은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김 장관은 물론 사령관의 격려서신 등이 줄을 이었죠. 덕분에 특별휴가 복귀 후 9박10일간 두 번의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고요.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무엇보다 몇 번의 양보(?) 끝에 기증받은 ‘양심냉장고’는 대대 병사 취사장에서 요긴하게 사용됐다고 합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그 냉장고는 고철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던 ‘해병대 정신’은 변함없이 빛날 것입니다. 노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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