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 앉아 늦은 저녁을 끓이다
더 내릴 데 없다는 듯 찻잔 위로 내리는 눈
맨발의 비둘기 한 마리 쓰레기통을 파고든다
돌아갈 곳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눈꽃 피었다 지는 부치지 않은 편지 위로
등 굽은 소나무 말없이 젖은 손을 뻗고 있다
간절히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한
빈 역사 서성이는 파리한 눈송이들
추스른 가슴 한쪽이 자꾸 무너지고 있다
<시 감상>
흔히 ‘세한(歲寒)’은 설 전후의 매서운 추위를 말하는데, 빠듯하고 고단한 삶을 비유하는 중층적 의미로 느껴진다. ‘세한의 저녁’이라고 했으니, 아마 시적 인물은 설 지난 저녁에 홀로 “공원 벤치에 앉아 늦은 저녁을 끓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온 세상을 덮어 버린 눈은 “더 내릴 데 없다는 듯” 그의 “찻잔 위로 내리”고, “맨발의 비둘기 한 마리 쓰레기통을”을 뒤지고 있다. 이 선명한 시·공간의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소진한 시적 인물의 상황과 처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돌아갈 곳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실상 돌아갈 곳이 없고, 그나마 쓴 “부치지 않은 편지 위로” 흩날리는 눈의 이미지는 애처롭고 처량한 시적 인물의 내면 심경을 강렬한 이미지로 비춰 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시가 먹먹한 가슴에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토록 철저하게 소외돼 외로운 시적 인물에게 “말없이 젖은 손을 뻗고 있”는 “등 굽은 소나무”의 훈훈한 몸짓 때문일 것이다. 이 반전의 이미지야말로 황량한 세상을 감싸 주는 위로의 울림이고, 절망에 빠진 시적 인물의 자아를 다독이며 희망과 온기를 전하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눈” “비둘기” “소나무”와 같은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해 현실의 풍경과 서정 자아를 절묘하게 결합하고, 반전의 이미지로 사랑의 가치를 전해 주는 시의 품격이 포근하고 아름답다.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간절히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는 참사람의 몸짓처럼.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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