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김준희의 클래식 읽기

돌고 도는 운명…기쁨도 절망도 인생이어라!

입력 2025. 01. 02   16:24
업데이트 2025. 01. 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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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의 마·이·클(마음으로 이어주는 클래식)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가난 권력 얼음처럼 녹아버리네 운명은 괴물…
화음 변화 자제 특정 리듬 반복 
음 몇 개로 만든 놀라운 역동성
종교적 색채 옅은 세속적 찬미가

카를 오르프. 출처=위키백과
카를 오르프. 출처=위키백과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 시대 여러 나라를 돌며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과 성직자들, 즉 골리야드가 쓴 노래와 시를 수록한 시가집을 말합니다. 단어 의미로 풀이하자면 ‘노래’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멘(Carmen)’의 복수형인 ‘카르미나(Carmina)’에 ‘보이렌(Beuren)’ 지방의 라틴어 이름인 ‘부라나(Burana)’가 합쳐진 말로, ‘보이렌의 노래’라는 뜻이 됩니다.

1803년 바이에른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견된 이 모음집은 종교적인 내용에도 중세시대 쓰인 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의 노래, 술과 도박의 노래, 풍자의 시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포함돼 있습니다. 12~13세기부터 전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대단히 세속적이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내용이 담겨 있는 흥미로운 문헌입니다.

 

독일 작곡가이자 음악학자, 교육자인 카를 오르프(1895~1982)는 그중 24편을 골라 독창과 합창으로 구성한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발표했습니다. 그의 3부작 칸타타 ‘승리의 삼부작’ 중 첫 번째 곡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1937년 완성됐으며,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한 독창과 합창을 위한 ‘칸타타’의 기본에 충실한 구성입니다.

오르프는 원래 뮌헨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드뷔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썼습니다. 몬테베르디와 17세기 작곡가의 작품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시와 음악, 리듬과 몸짓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적 작품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카르미나 부라나’를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그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내 작품은 다 버려도 좋다. 내 음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할 정도였고, 이 곡의 발표와 함께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됐습니다. 이후 ‘카투리 마르키나’(1943)와 ‘아프로디테의 승리’(1953)를 발표했는데, 첫 곡인 ‘카르미나 부라나’만큼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중세 건축물처럼 안정적이면서도 현대음악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카르미나 부라나’는 ‘서주’ ‘봄’ ‘주막에서’ ‘사랑의 정원’ ‘블랑치플로와 헬레나’의 큰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한 리듬과 낭만적인 따뜻함, 풍요로움이 가득한 선율이 가득 차 있죠. 또한 대위법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단순한 음형을 반복하며 명료한 단선율과 타악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강렬하고 원시적인 리듬을 강조하는 그만의 음악 양식을 확립합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어쩌면 20세기 작곡된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된 인기 있는 곡일지도 모릅니다. 원시 종교를 나타내는 듯한 강렬한 선율이 가사와 무관하게 큰 흡입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특히 도입부부터 인상적인 제1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는 영화 ‘엑스칼리버’(1981)를 비롯한 여러 영화 주제곡으로도 쓰였습니다. 한동안 JTBC의 대표적 요리 버라이어티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주 등장해 많은 시청자의 흥미를 돋우는 음악으로 기억됩니다.

 

 

카르미나 부르나에 실린 운명의 수레바퀴 삽화. 출처=위키백과
카르미나 부르나에 실린 운명의 수레바퀴 삽화. 출처=위키백과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곡의 최대 강점은 리듬에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곡은 화음이나 선율의 변화를 최대한 자제하고 단지 몇 개의 음만으로 특징적인 리듬을 반복하는데, 단순한 리듬이 주는 놀라운 역동성은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오르프가 리듬을 기반으로 한 음악교육 전문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오르프의 영향으로 초등학생들이 탬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등의 악기로 리듬을 익혀왔습니다. 또한 잊혀가던 바로크 악기인 리코더를 보급용으로 활용해 전 세계의 아동 음악교육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르프의 탁월한 음악적 감각이 그의 대표곡인 ‘카르미나 부라나’에 집약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첫 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 운명의 여신, 너는 달처럼 변하는구나 / 커지다가 작아지기도 하지 / 가증스럽고 힘든 인생 / 괴롭히다가 위로도 하지 / 가난, 권력, 얼음처럼 녹아버리네 / 운명은 괴물, 곧 공허해지고 /

너는 바퀴를 돌리고 / 엉뚱한 곳으로 구르면 /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 언제나 헛되이 사라진다 / 그림자이고, 비밀스럽고 / 네가 나를 공격하는구나 / 게임을 통해서 / 나는 맨손으로 돌아왔다 / 너의 악행 때문에 / 운명은 나를 거스르고 / 전력을 다해 / 미덕을 행하지만 / 힘은 약해지고 / 언제나 노예처럼 일하고 / 그래서 이 순간 지체 없이 / 울리는 현(絃)을 뽑았다 / 운명 때문에 / 강한 자가 쓰러지고 / 모두 나와 함께 눈물 흘린다!”

기독교적 색채를 느끼기 어려운 가사죠. 달리 표현하면 ‘카르미나 부라나’는 세속적인 찬미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세속 시가집 ‘카르미나 부라나’에는 행운의 여신에 관한 그림이 삽입돼 있습니다. 여신은 운명의 바퀴 한가운데 있고, 인간은 바퀴 곳곳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죠. 바퀴의 맨 위에서는 왕관을 쓴 인물이 “지배하라”고 외치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오른쪽 아래에는 “지배했도다”란 과거시제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또한 바퀴 밑에 깔린 인간은 “이제 왕국을 잃었다”며 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를 바라보고 “지배할 것이다”고 말하며 희망을 품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 은유는 인생의 끊임없는 변화, 그리고 부와 권력의 일시적 속성을 강렬하게 상기시키는 메시지입니다.

카를 오르프를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에 올려놓은 운명 같은 작품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운명’이라는 수레바퀴 안에서 반복과 변화를 계속하는 우리의 삶의 기쁨, 절망, 희망, 슬픔 등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역작입니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웅장한 합창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함께 건강한 한 해를 시작하길 바랍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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