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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야 알았네…늘 푸르른 것이 송백만이 아님을

입력 2025. 01. 02   16:07
업데이트 2025. 01. 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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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옛 그림 속 숨은 이야기 ① 세한도(歲寒圖)


제주 유배생활 중이던 추사 김정희 
중국서 구한 서책 보내온 이상적에게
푸른 소나무 그림과 글로 고마움 전해
대한·소한 사이 추위 ‘세한’ 이름 붙여 
그림 오른쪽 하단에 ‘장무상망’ 인장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마음 담아

 

김정희, ‘세한도’, 1844년, 두루마리, 종이에 먹, 23.9×108.2㎝, 국립중앙박물관(2020년 손창근 기증), 국보.
김정희, ‘세한도’, 1844년, 두루마리, 종이에 먹, 23.9×108.2㎝, 국립중앙박물관(2020년 손창근 기증), 국보.

 


고마운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가지고 있는 건 오직 거친 몽당붓 한 자루와 먹, 종이뿐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팔을 들어 붓을 잡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간다. 세한도(歲寒圖). 이윽고 마음이 전하는 풍경을 붓끝으로 그려낸다. 저 멀리 제주에 유배 온 김정희(1786~1856)에게 역관 이상적(1804~1865)이 몇 해에 걸쳐 중국에서 산 귀한 책을 북경에서 국경 넘어 한양으로, 다시 바다 건너 제주까지 보내줬다. 유배 온 죄인으로 김정희가 고마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과 글씨뿐이었다.

그림을 보자. 화면 오른쪽에 간결하고 힘찬 글씨로 그림 제목을 ‘세한도’라고 적었다. 세한은 대한과 소한 사이에 있는 한겨울 추위를 일컫는다. 조선 시대 ‘세한지조(歲寒之操)’라는 비유가 많이 쓰였는데, 역경을 당함에도 꿋꿋한 군자(학식과 지성이 있는 이상적인 유교적 인간상)를 뜻하는 의미로 활용했다. 짧은 글이 시작된다.

“우선(藕船: 이상적의 호), 이 그림을 보시게. 완당(阮堂: 김정희의 호).”

이렇게 그림을 받는 사람과 그린 사람을 밝혔다. 그리고 그림이 시작된다. 물기 없는 거칠고 메마른 붓으로 손가락을 벌린 듯 그린 솔잎이 시선을 이끈다. 이어 구불구불한 가지를 따라 고목 같은 나무기둥에 다다른다. 기둥의 표면은 거친 껍질에 이마저 듬성듬성 벗겨져 반질반질하기도 하고, 한쪽 가지는 잘리고 메말라 더는 솔잎이 날 수 없다. 마치 옴짝달싹할 수 없는 김정희의 처지를 대신하는 듯하다. 그 옆으로 사계절 푸른 잎을 보여주는 세 그루의 나무와 동그란 창이 난 집을 간략하게 그렸다.


세한도 문장 부분.
세한도 문장 부분.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인장.



그림이 끝나고 다시 글이 시작된다. 각 세로 1.1㎝, 가로 2.8㎝의 납작한 모양의 칸 안에 반듯하고 칼 같은 해서(楷書) 294자가 질서정연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이상적은 1843년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를, 1844년엔 129권 79책으로 구성된 하우경(賀?耕)의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북경에서 구해 한양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제주의 김정희가 있는 대정현까지 보내줬다. 

당시 제주는 풍랑이 일어 뱃길이 끊기면 편지 한 통 도착하기 힘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죄인과 내통한다는 누명도 쓸 수 있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일이었다. 김정희는 이러한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을 그림 옆에 가지런히 적었다.

(전략) 게다가 세상은 도도한 물결처럼 온통 권세와 이익만을 좇는다. 그런 풍조 속에서 이처럼 서책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을 들였는데도 권세와 이익을 얻게 해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면서 마치 권세와 이익을 좇는 세상사람처럼 하였다. (중략) 

이상적은 북경에서 어렵게 구한 서책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한양의 권신들에게 보내지 않고, 오히려 제주에 유배 간 김정희에게 보냈다. 이는 이상적이 학문적·인간적인 면에서 김정희를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여겨진다. 글은 다시 이어진다.

(중략) 공자께서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송백이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고 말씀하셨다. 송백은 본래 계절을 타지 않아 시들지 않는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송백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송백이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추운 겨울 이후 모습만을 찬탄했다. 지금 우선 군은 나에 대해 이전이라 해서 더한 것도 없고, 이후라 해서 덜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전의 군에게는 칭찬할 게 없더라도 이후의 군에게는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송하신 것은 그저 시들지 않은 곧은 지조와 굳센 절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겨울이라는 추운 계절에 따로 느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시련을 보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마움을 적고, 사람 사이 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보인다. 김정희는 그림과 글씨를 다 마무리하고, 그림 오른쪽 맨 아래에 인장을 찍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김정희는 1840년 10월 1일부터 1848년 12월 6일까지 제주에서 약 9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그전에는 부마 집안의 자제로 출세의 길을 달렸다. 20대에 이미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연행을 다녀왔다. 효명세자(1809~1830)의 대리청정 시절 정3품 동부승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보덕(輔德)으로 왕세자를 가까운 곳에서 모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주에서도 오지인 대정현의 가시나무 울타리를 친 좁은 공간에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처지가 됐다.

자신이 맞이한 겨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솔처럼 자신을 대해주는 사람들이 김정희는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림의 행간을 읽어가며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거꾸로 평소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그림과 속내가 담긴 글에서 인격적으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세한도’는 당대 명필가가 그린 국보로 지정된 그림이자 19세기 문인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그림을 통해 사람이 수단으로 쓰이지 않고, 고유한 인정과 도리를 지키는 교유를 배우게 된다.

새해다. 찬 바람은 불어도 세한도의 송백처럼 가슴속 푸르름은 지켜내자.

※‘세한도’ 한문번역은 ‘세한(歲寒)’ (국립중앙박물관 2021년도 특별전 도록)을 옮겼다.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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