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정덕현의 페르소나

별보다 보석...그저 반짝여서 무엇하랴 갈고닦아 더욱 빛나리라

입력 2025. 01. 01   13:30
업데이트 2025. 01. 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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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오징어 게임2’ 이정재, 스타에서 서민 영웅으로 


타고난 비주얼로 청춘스타로 반짝
조각 같은 외모가 오히려 족쇄로…
영화 ‘관상’ 통해 배우로 우뚝 서
지독하게 생존한 기훈과 닮아 있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 출연한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 출연한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이건 그냥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을 하다 걸리면 죽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서 다시 그 죽음의 게임으로 돌아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게 된 기훈(이정재)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미쳤다고 한다. 하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기훈은 안다. 이미 한 번 그 잔혹한 게임을 치렀고, 그곳에 참가한 456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1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다. 저 멀리 술래처럼 서 있는 영희 인형의 눈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고, 움직임이 걸린 이들은 사정없이 사살될 거라는 걸. 한 번 겪어 봤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안다는 것. 그것은 기훈이 이들을 피니시 라인까지 이끌어 살아남게 하려는 이유다.


이 장면은 영웅의 탄생이 대단한 운명이나 사명감 같은 거창한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기훈이 나서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456명이 참여해 1인당 1억 원씩 배정된 목숨값을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적립해 최후의 1인이 456억 원을 독식하는 게임이 오징어 게임 아닌가. 

사실 이건 ‘오징어 게임’ 시즌1의 맨 마지막에서 미국으로 떠나려던 기훈이 발길을 돌리게 된 이유기도 하다. 떠나려던 기훈은 인천공항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딱지남(공유)’에게 뺨을 얻어맞아 가며 딱지치기하는 사내를 보게 된다. 그건 이 잔혹한 게임이 여전히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어디선가 저마다 절박한 이유를 가진 이들이 모일 것이고, 그들 중 마지막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가 처참하게 살해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차마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오징어 게임2’는 바로 그렇게 돌아온 기훈이 어떻게든 게임을 만든 이들을 찾아내 끝장내려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이 평범 이하의 삶을 살다가 456명 중 1인이라는 우승자가 되는 기훈의 모습에서는 이 캐릭터를 연기한 이정재가 겹쳐지는 면이 있다.

시작부터 ‘모래시계’로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젊은 남자’ ‘태양은 없다’ ‘하녀’ ‘도둑들’ ‘신세계’ 등등 하는 작품마다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정재는 늘 ‘연기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달고 다니던 배우였다. ‘모래시계’에서 과묵하게 눈빛으로 순애보를 보여주는 보디가드 백재희로 주목받은 것도 실상은 연기력이 부족해 대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함께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대중은 그것 또한 이 두 배우의 투샷이 주는 비주얼 효과와 김성수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 연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정재는 배우가 아니라 모델로 시작했다. 그러다 인상적인 초콜릿 광고로 인해 ‘모래시계’ 재희 역할에 발탁됐다. 워낙 좋은 비주얼에 조각 같은 몸매를 갖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가 배우로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 오면서다. ‘하녀’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지만 무책임한 주인집 남자를 연기했고, ‘도둑들’에서는 비열한 뽀빠이 역할을 소화했다. 또 ‘신세계’에서는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을 타는 언더커버 역할로 아슬아슬하면서도 위태로운 인물을 자기 색깔에 맞게 연기해 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배우로서 이정재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진 건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다. 극 중 ‘이리’ 상으로 소개되는 수양대군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동물 다큐멘터리까지 참고해 가며 연구한 이정재는 이 역할을 통해 그토록 오래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의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그 후 ‘암살’에서 희대의 친일파 역할을 소화한 이정재는 이제 청춘스타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그토록 따라다니던 연기력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배우로서 대중 앞에 서게 됐다.

그를 글로벌한 배우로 등극시킨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일련의 연기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오징어 게임’의 기훈은 그의 빛나는 비주얼을 앞세우던 역할들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밑바닥 인생이고,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잔혹한 게임에 저도 모르게 뛰어들었다가 치열한 과정을 거쳐 최후의 1인이 되는 인물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가 한 연기 중 가장 두드러진 장면이 달고나 미션에서 혓바닥으로 달고나를 핥는 장면이라는 외신들의 평가는 그의 연기가 이제 비주얼이나 멋진 이미지와 상관없는 배역에 대한 깊은 몰입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게 한때 연기력에 관한 의구심이 따라다니던 이 배우는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등 미국 메이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그는 디즈니+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 드라마 ‘애콜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국내 무수한 배우 중 단연 눈에 띄게 한국 배우로서 꼭대기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정재는 앞서도 말했듯 시작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스타였다. 워낙 도드라지는 비주얼을 갖고 있어 묵묵히 대사 없이 눈빛만 보내도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배우로서는 족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가 꽤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족쇄를 풀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그 높은 위치에 서 있던 청춘스타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서민들 가까이로 다가가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그는 비열한 역할은 물론 악역, 친일파 등 자신의 비주얼과는 상관없는 역할 속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게 ‘오징어 게임’의 기훈이 지닌 서민의 얼굴이었다.

‘오징어 게임2’는 그렇게 지독한 생존을 통과한 그가 영웅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들을 담았다. 저 높은 별이 아닌, 바로 옆에서 우리와 함께하며 그 아픔을 공감하는 영웅. 지난한 과정을 거쳐 글로벌 배우가 된 이정재에게서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로 그 서민 영웅의 페르소나가 어른거린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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