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모든 사물은 오직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것은 없다. 세상과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이 개념을 자의적 기준으로 종종 망각할 때가 있다. 관계가 틀어지고 깨어지는 순간이다. 요즘 세태를 빗댄 ‘삼척동자’라는 신조어가 있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하는 삼척이 바로 그것이다. 계층별 조직이나 언론, SNS를 막론하고 이런 삼척동자로 인해 삶이 시끄럽고 팍팍하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열등감이 작동해서인지 부족한 자기를 과시하는 데 바쁘다. 그러나 이런 속 빈 자기과시는 세상이 인정해 주기는커녕 결국 스스로 공허와 허탈의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愚)처럼 보인다’는 의미는 대척점의 서로 다른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어리석을 우’에는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모습이 지향해야 할 심오함이 담겨 있다. ‘愚’는 ‘원숭이 우(?)’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D. L. 체니는 영장류의 사회적 의사소통, 인지 능력, 집단 내 상호작용을 연구한 유명한 동물학자다. 그의 저서 『원숭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 다른 종의 속마음』에 따르면 긴꼬리원숭이는 숲을 지나갈 때 항상 선두에서 꼬리를 높이 세워 천적으로부터 자신이 공격받는 기회(위험)를 증가시켜 다른 원숭이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이타적 속성이 강하다고 한다. 긴꼬리원숭이의 어리석음에는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필요한 경우 기꺼이 위험마저 감수하는 겸손과 덕의 지혜가 가득하다.
휴브리스(Hubris)의 비극을 부르는 4형제는 자만과 교만, 거만과 오만이다. 이들은 늘 어깨동무를 한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스며든다. 야심이 많고 완고했던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듣지 않는다. 하늘 높이 날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끝내 죽음을 맞는다. 이카로스 신화는 인간의 오만함과 억제되지 않은 야망의 위험에 대한 비극적 서사를 담고 있다. 오만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곧 답이다’라는 지나친 자기확신이다. 이러한 자기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부심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최면을 건다. 자기최면에 걸린 자부심이 마음속 깊이 들어오면 복도 양옆에 줄지어 선 자만과 교만, 거만과 오만의 4형제와 손잡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만은 겸손을 잃고, 자신만만함이 도를 넘어서는 순간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교만은 자신의 가능성을 과신한 나머지 중심을 잃고 지위의 높음을 자랑하고 뽐내는 시건방진 행동의 대명사 격이다. 거만은 교만의 형으로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거들먹거리며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때론 업신여긴다. 이들의 맏형 오만은 자만과 교만, 거만의 상태를 넘어설 때 걸리는 불치병이다. 이제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져 겸손을 잃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어리석은 천사가 악마와 춤을 추는 상태가 된다.
‘휴브리스’의 고정관념에 빠지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시작과 끝이 그러하듯 지혜로움과 어리석음도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긴꼬리원숭이가 기꺼이 선택한 어리석음의 큰 지혜가 가슴에 와닿는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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