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 군복의 역사 ③
근세~근대 황실·왕정·제국 위엄 과시
화려한 문양·색상·디자인으로 차별화
현대엔 다시 실용성…위장 패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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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에는 동양과 서양이 일견 서로 비슷하게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지향을 보였으나 자세한 내용은 크게 달랐다. 동양은 관본위의식(官本位意識: 관료가 통치자 이하 사회자원의 최대 점유자라는 묵시적 기대)에 기반한 군권지상(君權至上)을 이룩해 ‘자연적인 가산제 국가’를 유지했다. 즉, 군대가 군주와 그에 준하는 권력자에 복종하는 가병(家兵)으로 조직 및 운용됐다. 서양은 절대주의를 중심으로 국가와 주권에 대한 분리적 해석이 등장하며 ‘비자연적으로 설계된 국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즉, 다양한 정치·사상적 설계를 통해 군주(주권자)와 국가가 분리됨에 따라 주권자가 지배하는 ‘국가의 군대’라는 지위와 국가색이 두드러진 제식 군대가 등장했다.
[동양]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조선
명나라 영락제 이후, 중국은 군복 규격화를 중시했다. 영락제의 대외 원정과 북방 몽골 방어를 통해 기능성과 상징성을 겸비한 군복이 필요했다. 북방 환경 영향을 받아 유입된 두정갑(頭釘甲)은 철판을 두루마기 형태의 복식 내부에 삽입해 방어력과 기동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청나라 시대에는 만주족 전통 복식 영향을 받아 철판 대신 가죽과 비단을 사용한 경량 갑옷이 도입됐다. 이 시기 군복은 부대별 색상과 문양이 명확히 구분됐고, 병사 계급을 나타내는 장식이 추가됐다. 청나라 군복은 기능성 외에 황실의 권위와 만주족 전통을 상징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강조했다.
조선은 군복 양식에서 대륙 정권 영향을 받았다. 찰갑과 두정갑 형태가 주를 이뤘다. 왕실 의장대와 같은 특수 병과는 화려한 문양과 색상으로 차별화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방어 중심의 군사체제를 확립했다. 이에 내구성이 강하고 수리가 용이한 가죽 갑옷과 대량생산이 가능한 천으로 된 경갑이 병사들에게 보급됐다. 이는 조선 후기 중앙군의 표준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는 데 기여했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 시기 일본의 군복은 센고쿠 시대 갑옷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의례적 역할이 강조됐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 강화를 통해 일본은 지방자치를 통제하는 중앙집권을 이룩해 대체로 안정적인 시대를 보낸다. 기존 무사계층은 더 이상 상시로 갑옷을 걸치고 직무에 임하지 않고 학문을 갈고닦는 봉록제 공무원이 됐다. 서민문화 번영으로 인해 복장에서의 차별이 옅어졌다.
[서양]
-영국
1642년부터 1651년 사이 영국은 구성국 잉글랜드에 발생한 내전을 거치며 왕당파에 맞선 의회 지지파가 상비군으로 창설한 신형군(New Model Army)이 적색 군복을 채택해 장병의 소속감과 규율을 강화한 일을 시작으로 피아 구분을 위한 군복이 등장했다. 왕정복고 이후 프랑스 영향을 받은 영국군은 이 형식 위에 화려한 장식이 가미된 군복을 도입했다. 레드코트(Redcoat)로 대표되는 이 군복전통은 이후 식민지 확장기를 거쳐 오늘날 예복까지 이어진다.
- 프랑스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군복은 의례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푸른색과 흰색을 기반으로 한 군복은 절대왕정의 권위를 상징했으며, 병사와 장교 간 계급 구분을 강화하는 금사와 휘장이 사용됐다.
- 프로이센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 중 하나인 프로이센 왕국은 18세기 초 프리드리히 대왕 시기 통일된 색상과 디자인을 갖춘 실용적 군복을 채택했다. 프로이센 군복은 영국 레드코트 형식에 훗날 프러시안블루라고 불릴 군청색을 가미해 효율적으로 구분되며 단정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는 근세 군복 규격화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된다. 피켈하우베(Pickelhaube)와 같은 철제헬멧과 기병흉갑이 서서히 경량화되면서 기동성을 확보했다. 이처럼 동서양 근세 군복의 발전은 당시 지정학적 환경과 사회적 필요, 군사적 효율성, 정치적 변동, 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근대]
근대가 되면 동양과 서양,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국민개병(國民皆兵)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라는 정체성과 현장, 목적에 맞는 군복이 설계되기 시작한다. 이때 군복은 화려한 장식과 선명한 색상이 두드러져 ‘멋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군복 입은 자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존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모두가 병역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신분제 유무를 떠나 국가적 통합이 어느 정도 이뤄진 시기였다.
- 프랑스 제국,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혁명전쟁 시기 프랑스 군복은 공화정의 이상을 반영하며 애국애민을 강조한 간결한 디자인으로 변화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과 강렬한 색상을 사용한 군복이 등장했다. 특히 짙은 청색 코트와 붉은 바지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군의 상징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전장에서의 실용성과 위장 효과가 중시되며, 눈에 띄는 색상과 장식은 감색과 회색 등으로 대체됐다. 이는 대량생산된 군복이 상징적으로 군인 개개인의 국가적 역할을 강조하는 도구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서구 군사 문화를 받아들이며 군복 개혁을 단행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시작한 서구화정책 연장선에서 녹색과 금색의 화려한 군복이 주요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 군복은 19세기 말부터 러일전쟁과 같은 충격적인 패배를 겪으며 더 전술적인 설계로 변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열악한 재정으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간소화된 디자인과 탁한 회색조 색상이 채택됐다. 이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와 병사 개인의 역할 간 긴밀한 연결을 상징했다.
- 일본 제국
보신전쟁과 세이난전쟁을 통해 근대국가로 출범한 일본은 서양 군사기술과 복식을 빠르게 수용했다. 초기 군복은 순차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군복을 모방해 제작됐다. 이는 서구화를 통한 근대국가 건설의 상징이었다. 갑오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체로 검은색과 흰색 바탕에 금색과 적색으로 포인트를 준 군복을 통해 황국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전장에서 전술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 군복의 변화는 동양에서 처음으로 국민개병제에 기초한 국가적 군사 조직의 성장을 보여준다.
- 대한제국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국가적 자주성을 드러내기 위해 군제개혁에 나섰다. 대한제국 군복은 조선 후기 전통복식을 벗어나 서구화된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특히 프로이센과 러시아 군복을 참고해 흑색 바탕과 금색 장식 위주의 조합으로 제작된 새 군복은 나라의 근대적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재정적 제약과 일본의 간섭으로 인해 제한적인 성과를 거뒀다. 1907년 제국 군대가 해체되며, 이 시기 군복은 한반도 근대사의 상징적 유물로 남았다.
이때 군복은 단순한 복식을 넘어 시대와 국가의 이상, 전장의 현실, 그리고 국민적 통합 욕구를 담아낸, 근대의 거울이었다.
현대 군복은 전장 형편이 크게 변화했다. 실용성과 기능성을 더욱 강조하며, 탁한 단색이나 위장패턴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는 보병이 더 이상 진형을 이뤄 싸우지 않고 각개전투가 기본이 된 환경에서 위장효과를 높여 생존율을 높여줬다. 이 과정에서 군복 색상으로 국가가 구분되는 시대는 끝났다.
- 미국
양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군복을 세계 경찰국으로서의 위상과 기술적 혁신의 상징으로 발전시켰다. M-65 야전 재킷과 같은 디자인은 전장에서의 실용성을 극대화했고, 베트남전에선 정글 환경에 적합한 위장 패턴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이후 디지털 위장 패턴(ACU)과 다목적 전투복(Multicam)은 다양한 전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 군복은 전장의 필요에 따라 첨단 소재를 결합하며 장병 생존률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대한민국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군복은 초기엔 일본과 미국식 군복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1960년대 이후 위장복이 도입됐으며,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정글 위장 무늬가 도입됐다. 이후 한반도 지형에 맞춘 독자적 위장 패턴이 개발됐다. 현재 대한민국 군복은 첨단 소재와 위장 효과를 결합해 장병 활동성을 높이는 설계가 강조된다.
이처럼 군복은 전쟁의 상징에서 병사의 생존을 지원하는 도구로 진화해 국방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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