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16.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어둑한 땅 환한 하늘 현실에서 불가능함이 공존하는 세상
역설·충격·착시 붓으로 그린 한 편의 시 해석보다 느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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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밤. 적막한 숲속에 한 채의 집이 있다. 집 앞에 놓인 하나뿐인 가로등은 처연해 보이지만 강물에 빛이 반사돼 존재감이 명징하다. 2층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또 하나의 밝음을 피워내며 암흑을 밝혀준다. 그런데 하늘이 밝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마저 뚜렷하게 떠 있는 대낮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풍경. 낮과 밤이 공존하는 세상이라니.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왜 이런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그렸을까? 어두운 밤의 풍경과 밝은 낮의 하늘이 공존하는 장면을 1947년부터 1965년까지 ‘빛의 제국’이라는 동명의 연작으로 17점을 그릴 정도로 천착했다. 그중 1954년 그린 유화가 지난 11월 19일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1억2120만 달러(약 1686억 원)에 낙찰됐다. 역대 마그리트 작품 중 최고가이자, 초현실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낙찰가다. 미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자선사업가로 활동한 미카 에르테군의 오랜 소장품이었다가 그녀의 부고로 경매에 나와 치열한 경합 끝에 익명의 전화 입찰자에게 판매됐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이만큼의 금액을 지급할 의사를 나타낸 것은 세상에 단 한 점뿐인 희귀 작품을 거머쥐는 만족감 때문이겠지만 작가와 작품이 지니는 의의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마그리트는 벨기에 남부 지역 공업도시 레신느에서 양복 재단사인 아버지와 모자 상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부모님 덕분에 예술가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인지 훗날 양복과 중절모를 그림의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 그의 작품에는 ‘연인’ 시리즈처럼 하얀 베일이 얼굴을 덮은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14세 때 겪은 어머니의 자살 때문으로 추정된다. 우울증 증상의 정신병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샹프레강에 뛰어들어 사망했다. 어린 마그리트는 새하얀 치마가 얼굴을 뒤덮은 채 인양된 어머니의 시신과 마주해야만 했다. 본인은 이를 일축했지만 유년 시절 각인된 기억이 그의 예술세계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했다는 게 정론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곧잘 기억의 연장선 위에서 풀이된다. 마그리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공동묘지에서 자주 놀곤 했다. 어느 날 부서진 돌기둥과 낙엽 더미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화가를 보고 회화의 계시적인 힘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묘지 납골당 출구 앞에는 우뚝 솟은 포플러 나무가 있었는데, 이는 훗날 ‘빛의 제국’을 포함한 마그리트 작품의 대표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나무는 인간의 삶과 맥락을 같이하는 사물로 땅으로부터 태양을 향해 자라나는 어떤 행복에 대한 이미지인 동시에 의자부터 출입문, 관과 같은 형태로 우리의 일생을 관망하는 매체라고 한다.
마그리트는 18세에 브뤼셀에 있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며 재능을 키워나가던 중 초현실주의 미술에 눈을 뜬다. 당시는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많은 예술가가 프로이트의 무의식 세계에 공감했고, 꿈속이나 비합리적인 잠재의식 상태를 표현하며 초현실주의자로 지칭됐다. 살바도르 달리가 사물을 왜곡하고 변형시켜 낯설게 했다면, 마그리트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일상 요소를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 결합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주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했다.
1929년작 ‘이미지의 배반’이 데페이즈망의 역설을 응용한 전형적인 예다. 사람들 눈에 익숙한 형태로 파이프를 그리고, 아래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구를 적었다. 이 말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이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고, 파이프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양립 불가능한 두 상황이 한 그림에 공존하는 패러독스도 사용했다. ‘빛의 제국’에서 하늘은 밝은 대낮인데 아래쪽은 어둑한 한밤이다. 서로 다른 개념이 심지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순간적인 착시로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건드린다. 마그리트는 관념을 깨는 자신을 미술가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바라며 자신의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라고 말하곤 했다. ‘빛의 제국’에 대해서도 “낮과 밤의 동시성은 사람을 놀라고 홀리게 만드는데, 나는 이런 힘을 ‘시’라고 부른다”고 언급하며 본인의 작품에 대해 해석보다는 느낌에 집중하길 바랐다. 인간의 통념을 시각언어로 변화시키는 마그리트는 붓을 든 시인이자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빛의 제국’에서 밝은 하늘은 희망의 상징이고 어두운 지상은 절망으로 곧잘 해석된다. 그래도 적막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은 가냘픈 불빛을 강물에 반사해 주변을 넓게 밝혀주고, 불 켜진 방에서는 따스한 생명의 온기가 느껴진다. 목하는 어둡더라도 희망의 빛은 주변에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높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연작 후반으로 갈수록 하늘 면적이 넓어지는데 삶의 궤도와도 비슷하다. 노년에 접어들수록 세상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더 크게 바라봐야만 하는 인생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당연성의 벽을 깨고 언어와 사고의 일탈을 유도하는 힘이 담긴 마그리트의 다양한 모티프는 지금까지도 영화와 광고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복잡한 형식의 어려워 보이는 현대미술은 과도한 해석의 여지로 적용이 쉽지 않지만, 익숙한 이미지의 결합으로 다가선 마그리트는 역설과 모순, 대립과 조화가 담긴 화폭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낯선 이미지는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기호와도 들어맞아 더욱 인지도를 높이게 됐다.
이렇게 예술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삶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선사한다.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그 철학을 이해하면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보는 기회는 예상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랜 관념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점차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다 보면 기발한 발상으로 생긴 변화의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함께하지 못할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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