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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도 낯선 이방인도 멈출 수 없는 삼바~

입력 2024. 12. 26   16:36
업데이트 2024. 12. 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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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골목 속으로 
② 춤·축구·흥이 가득한 리우데자네이루 

산등성이 다닥다닥한 집…부산 닮은 해변도시
인구 20%가 빈민가 ‘파벨라’에 살지만
밝고 건강한 주민들이 칭찬으로 환영하는 곳
골목마다 플립플롭 신은 꼬마들 현란한 드리블 
축구화만 신겨도 월드컵 우승 밥 먹듯 할 수밖에
빵산의 석양 보며 삼바축제 때 다시 오리라 다짐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다. 대부분의 국가가 스페인어를 쓰는데,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축구와 커피, 삼바의 나라이기도 하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삼바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가면 헐렁헐렁한 신발 ‘플립플롭’만 신고도 붕붕 날아다니는 동네 축구와 힘차게 점프하는 비치발리볼을 볼 수 있다. 전체 인구의 20%가 빈민가에 사는데도 밝고 건강한 느낌이 들고, 치안이 안 좋은데도 자꾸 까먹게 되는 신비한 힘이 있다. 바다와 산동네의 조화가 우리나라 부산과 닮았고, 세계에서 공놀이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진짜 흥과 정열이 뭔지 궁금하다면 리우데자네이루로 오라.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이 환한 미소로 답을 줄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물 예수상.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물 예수상.

 

너무나 오고 싶었던 꿈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는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도시다. 18년 전 브라질을 여행했을 때 세계적인 삼바축제가 열리던 기간이었다. 삼바축제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다. 축제 시즌엔 브라질 전역이 난리가 나는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는 삼바축제가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브라질에 왔으면서 리우데자네이루를 그냥 지나친다는 건, 한국에 와서 서울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축제기간엔 숙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땐 세계적인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무료 공연까지 있어 방을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집 하나를 빌려 수십 명이 합숙하듯 축제를 기다리는, 한마디로 광기의 시기여서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던 나는 리우데자네이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8년 만의 브라질이다. 리우데자네이루와는 첫 만남이다.


빈민가 ‘파벨라’를 바라보는 관광객들.
빈민가 ‘파벨라’를 바라보는 관광객들.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리우데자네이루 해변.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리우데자네이루 해변.

 


환대와 칭찬의 나라 브라질

18년 전 남미 전역을 돌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강도를 만나 노트북과 배낭을 잃어버린다든지, 식당에선 아무리 주문해도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든지.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가? 다시는 아르헨티나에 오나 봐라’. 분한 마음으로 이웃 나라 브라질로 입국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르헨티나와는 180도 달랐다. 잘 웃어 주고 귀 기울여 줬다. 우연히 만난 브라질 아가씨는 부모님이 둘 다 한국인이었다. 그럼, 한국인 아닌가? 자신은 엄연한 브라질 사람이라고 했다. 브라질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브라질 국민으로서 아무 차별 없이 자란 티가 났다.

브라질은 백인이 많긴 하지만 흑인·혼혈도 백인만큼이나 많이 보인다. 인종과 상관없이 평균적으로 인물이 참 좋다. 세계적인 모델 중 브라질 출신이 적지 않은데, 왜인지 알겠다.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건강한 육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어떤 이라도 브라질에 오면 ‘내가 좀 잘났나?’ 우쭐함이 들 수밖에 없다. 그들이 치켜세워 주기 때문이다. 칭찬과 환대, 이 두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인종 백화점 브라질, 모자이크의 나라 

브라질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다인종 국가다. 인구의 90%는 백인 혹은 백인과의 혼혈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10% 중 7.6%는 흑인, 아시아인은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특이하게도 일본인이 많이 산다. 일본인이 대대적으로 이민을 간 유일한 나라가 브라질이다. 일본인과 일본인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이 200만 명이 넘는다.

브라질은 땅만 큰 게 아니다. 인구도 2억 명이 넘는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최대의 밀림 아마존도 무려 60%를 브라질이 차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세계 최대 이구아수폭포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나눠 갖고 있다. 강대국 중 강대국이지만, 우리나라와 멀고 접점이 되는 뉴스가 없다는 이유로 브라질을 잘 모르거나 과소평가한다.

브라질은 축구만 잘하는 게 아니다. 배구·비치발리볼·농구 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인기인 무예 스포츠 주짓수도 브라질이 원조다. 그런데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 문화의 중심지다. 삼바, 보사노바 음악도 모두 리우데자네이루를 빼고 말할 수 없다. 브라질이 궁금하다면, 진짜 브라질을 보고 싶다면 리우데자네이루로 와야 한다는 얘기다.

 

리우데자네이루 대표 관광지 빵산.
리우데자네이루 대표 관광지 빵산.


부산을 닮은 도시, 리우데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는 부산을 많이 닮았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산등성이를 꽉 채운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이나 이바구길이 단번에 떠올랐다. 언뜻 비슷하긴 하지만, 브라질 집들이 훨씬 초라하다.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를 ‘파벨라(Favela)’라고 하는데, 무려 그 개수가 600개를 넘는다. 주로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이들이 도시 외곽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파벨라가 형성됐다. 우범지역이어서 일반 여행자는 출입을 삼가는 게 좋다.

600여 개의 파벨라 중 상대적으로 치안과 경제 수준이 나은 곳은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빈민가만 전문으로 안내하는 투어도 있으니 개별적인 방문보다 투어를 이용하는 게 좋다. 시간이 없어 파벨라 중 한 곳만 잠시 들렀다. 관광객 여럿이 사진을 찍고 있어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안전한 동네라는 건 아니다. 사고가 일어나는 곳은 누가 봐도 험악할 거라고 착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평범해 보인다. 지난 2월에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범죄조직과 경찰의 총격전으로 많은 이가 죽었다. 고요한 바닷물 아래 상어가 살듯, 평화로운 지붕 아래서 어떤 범죄가 도사릴지 모를 일이다.


세계적인 해변 코파카바나 

숙소가 있는 해변가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은 곳이다. 세계적인 해변 코파카바나가 코앞인데, 해운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수많은 비치발리볼 경기장, 축구장 정도랄까? ‘비치사커(Beach Soccer)’로 부르는 스포츠 종목 자체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됐다. 5인이 팀을 이뤄 축구공보다 작고 가벼운 공을 찬다. 이제는 월드컵까지 열리는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했다.

‘플립플롭’이란 말을 혹시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사이만 걸쳐 신는 슬리퍼로, 우리도 웬만한 집에 한두 켤레씩은 있을 거다. 플립플롭 신발 자체가 브라질에서 탄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조리, 인도의 채플도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브라질에서 세계적인 브랜드 하바이아나스가 탄생하면서 지구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신발로 거듭났다.

브라질이 축구 강국이 될 수밖에 없는 비밀을 알아냈다. 조금만 방심해도 쓱쓱 벗겨지는 플립플롭으로 동네 꼬마들이 어찌나 현란하게 드리블하던지. 축구화만 신으면 펄펄 날아다닐 축구 천재가 골목마다 널렸다. 축구도 춤을 추듯 한다. 힘을 빼고 강약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어떤 스포츠든 잘하는 법인데, 브라질은 어릴 때부터 이미 그런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아 버린다. 이러니 월드컵 우승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빵산에서 인생 석양을 만나다 

리우데자네이루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예수상과 빵산이다. 예수상은 해발 700m 코르도바산에 30m 높이로 지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론 그렇게까지 감흥을 받지 못했다. 빵산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빵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모양 때문이다. 정확한 이름은 ‘빵 지 아수카르’로 ‘설탕빵’이란 뜻이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설탕인데, 그 모양이 지금의 빵산과 무척 닮았다고 한다. 빵 모양의 설탕을 닮은 산, 그래서 빵산이라고 부른다. 빵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탄다. 산(해발고도 396m)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어서 ‘브라질 대도시치곤 구경거리가 좀 약하지 않나?’ 실망할 때쯤 천천히 석양이 지고 있었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오렌지색 태양광선이 물밀듯 뿜어져 나오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가 리우데자네이루다. 하지만 이 석양을 본 순간,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됐다. 삼바축제 때 다시 한번 이 도시를 찾고 싶다. 아무리 비싸고 도떼기시장처럼 사람이 징글징글 붐벼도, 많은 이가 찾는다는 건 이유가 있는 법. 세계 최고의 축제로 찬사받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 카드 빚이 많건, 승진시험에 떨어졌건 브라질 사람들은 음악만 나오면 흔들어 댄다. 그 낙천성을 조금이라도 묻어 오려면, 춤으로 가득한 삼바가 제격이겠지.

짧게 머물렀어도, 충분히 강렬했다. 브라질은 꼭 다시 와야만 하는 나라가 됐고, 리우데자네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품은 도시로 남았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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