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 묵념.” 나는 고(故) 박동혁 병장의 자택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박 병장이 부모님 곁을 떠난 지 어느덧 2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모님께서는 모든 걸 자택에 담아두셨다. 박 병장 방에는 그의 어릴 적 사진, 군 복무 당시 사진, 사용했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물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자랑스러운 아들 박동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박 병장은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정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이때 전신에 100여 개의 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으며, 3개월여 투병 끝에 전사했다. 사후 화장을 하고 나온 포탄 파편 무게가 3㎏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이 와중에도 부상당한 본인의 몸을 챙기지 않고, 쓰러진 전우를 끝까지 치료하며 주어진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했다. 그의 희생정신을 계승해 2010년 박동혁함이 탄생했다.
나는 올해 5월 이러한 역사를 지닌 2함대사령부 박동혁함에 부임했다. 이후 초빙강연을 위해 함정에 방문해준 박 병장의 아버님을 처음 뵙고 감사하게도 자택에 초대해주셔서 1박2일간 박동혁함 대원들과 방문했다. 부대를 나서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박동혁함에 근무 중인 우리를 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팠던 과거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과 함께 짧은 시간이지만 부모님께 힘이 돼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고 박 병장의 방에서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후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당에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일손을 도왔다. 그날 저녁,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대원들이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님께서는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며 연평해전 이후 박 병장의 투병 생활과 아들을 떠나보낸 후 겪은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말씀을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만을 생각할 때 남은 가족들의 희생과 슬픔은 계속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우의 가족들, 나아가 국민에게 이러한 고통을 짊어지게 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와 줘서 고맙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것이었다. 유가족과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해와 북방한계선(NLL) 수호의 임무 완수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박동혁함의 전투체계관으로서, 선배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또다시 적이 우리를 도발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강력한 안보 구축에 이바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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