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핏줄보다 붉은 ‘마음’ 가족, 계획대로 됐어

입력 2024. 12. 23   16:58
업데이트 2024. 12. 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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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가족계획’, 잔혹함 속에서 피어난 가족의 초상

특교대 인간병기로 자란 영수·철희 
똑같이 자라날 지훈·지우와 탈출해
적과 싸우며 진짜 가족으로…

‘영수’ 배두나 ‘브레인 해킹’ 능력
관계 형성에는 사용하지 않아
오로지 이해와 연대로 ‘개념’ 재구성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가족계획’이라는 제목이 주는 첫인상은 흔한 주말 가족극의 전형성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익숙함을 과감히 깨부수며, 완전히 새로운 가족 서사를 제시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혈연보다 강한 유대를 만들어가는 가족 이야기.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은 잔혹함과 따뜻함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현대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기억을 조작하는 ‘브레인 해킹’ 능력을 지닌 엄마 영수(배두나)를 중심으로 전통적 가족의 틀을 넘어 선택과 연대로 구축되는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섬세하면서도 대담하게 탐구한다.

음울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금수시를 메인 배경으로 하는 ‘가족계획’은 연쇄 살인마와 빌런 집단, 그리고 특교대라는 과거의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작품은 혈연이 아닌 결속과 이해로 만들어지는 가족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가족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또한 누와르적 긴장감과 블랙 코미디의 아이러니가 결합해 기존 가족 서사의 틀을 넘어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서사를 제시한다. 그야말로 OTT 시리즈이기에 가능한 과감한 시도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포스터.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포스터.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이야기 중심에는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을 지닌 영수가 있다. ‘브레인 해킹’은 그녀가 특교대를 탈출한 뒤 가족을 보호하고 과거를 숨기는 데 활용되는 강력한 기술이다. 이 능력은 흔적을 남기지 않아 물리적 외상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며 기존 유사 작품 속 사적 제재와 달리 법적·윤리적 논란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영수와 가족에게 심리적 부담과 도덕적 갈등이라는 무거운 대가를 요구한다. 이는 영수를 보호자이자 해결사로 부각하는 동시에, 그녀의 능력이 불러오는 내적 갈등과 인간적 한계를 조명하는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영수가 이 강력한 능력을 가족 간 관계 회복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진심과 시간을 통해 관계를 되돌리려는 의지의 상징이다. 딸 지우가 여전히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음에도, 영수는 브레인 해킹이라는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진정성과 노력으로 관계를 회복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가족의 재결합을 이루려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영수의 가족 이야기는 특교대라는 과거 맥락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영수와 철희(류승범)는 갓난아이였던 지훈과 지우가 자신들처럼 병기로 길러지지 않기를 바라며 특교대를 탈출했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 가족이란 단순히 함께하는 이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존재 그 자체다. 이런 과거는 현재 가족으로서의 끈끈함을 되새기게 하며,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낼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서먹했던 가족이 하나로 결집하게 된 계기는 예상치 못한 외부의 위기였다. 이 과정은 단순히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 내에 얽혀 있던 미묘한 감정을 풀어내는 계기가 된다. 집요한 연쇄 살인마와 빌런 집단은 가족을 점점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 과정은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지키기 위한 결속으로 이어졌다.

작품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족 간 변화가 드러나는 섬세한 디테일에 있다. 늘 아침을 거르던 지우가 “후라이보다 계란말이가 더 좋다”고 말하는 멋쩍은 고백이나, 화장실 거울 앞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연습하는 모습은 가족이란 일상의 작은 순간들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는 혈연 대신 이해와 노력이 가족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세대 간 배우들의 협업을 통해 가족 서사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를 연기한 배두나와 류승범은 오랜 경력에서 우러나온 깊이를 더했고, 다음 세대인 지훈과 지우를 맡은 로몬과 이수현은 신예다운 에너지로 활기를 불어넣으며 조화를 이뤘다. 두 세대의 연기 앙상블은 전통적 가족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

‘가족계획’은 블랙 코미디와 정의 구현 서사를 교묘히 결합하며 가족이라는 본질적 주제를 정면으로 탐구한다. 특히 OTT 콘텐츠에서 흔히 시도되는 자극적이거나 스타일리시한 접근을 넘어 선택적 가족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깊이 있게 성찰한다. 현대 사회에서 혈연에 기반한 전통적 가족 구조가 서서히 해체되는 가운데 선택적 가족은 단순한 대안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족계획’은 가족 구성원 간 복잡한 갈등과 연대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이 변화의 양상을 생생히 드러낸다. 작품은 단지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가족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하나의 거울로 기능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혈연에 기반한 전통적 관계가 아닌, 이해와 연대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가족의 가능성을 ‘가족계획’은 대담하게 탐구한다.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가족 개념을 섬세히 조명하며, 선택과 연대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정성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관객에게 깊은 여운과 함께 ‘가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작품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가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필자 박현민은 신문사·방송사·잡지사를 다니며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및 자문위원이며, 『K-콘텐츠로 보는 현대사회』 등 4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신문사·방송사·잡지사를 다니며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및 자문위원이며, 『K-콘텐츠로 보는 현대사회』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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