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35. 2013년 남수단 한빛부대와 유엔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 <4>
초소장은 계급 아닌 부임순으로 맡아
만찬 초청 받아 간 호텔 입구 신체 검사
파키스탄·인도 카슈미르 매일 총격전
귀국길 일행과 다시 들른 두바이몰
라마단이라 화장실 옆 숨어서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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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공항. 입국 수속을 밟으려는 데 발목이 잡혔다. 두바이에서 문제가 됐던 비자가 원인이다. 과연 이 비자가 유효하냐를 두고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론이 났는지 일행 몇 명의 여권에 비자를 붙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만약 입국시켰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다시 시작된 논의. 결국 해결 방법이 나왔다. 72시간 무비자 체류 조건으로 입국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을 다시 회수해 붙였던 비자를 제거하려다 떼지지 않으니 포기하고 그냥 들어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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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을 나온 유엔 차량을 타고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새벽 4시다. 잠은 다 잤다. 가야 할 곳이 멀어 아침 7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그런데 짐을 내리고 각자의 것을 챙기는데 주인 없는 가방이 2개 남는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다들 손사래 친다. 살펴보니 가방 태그에는 무하마드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앞서 입국 절차를 밟는데 공항 직원들이 가방을 포함한 우리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같이 파손되기 쉬운 것이 있어 놔두라고, 우리가 수속한 뒤 직접 내리겠다고 하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입국 수속 후 보니 우리 짐이 한데 뭉쳐 있었다. 공항 직원들이 짐을 모으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것도 섞여 들어온 것이다. 일단 자기 짐이 잘 있는지만 확인한 뒤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싣는 바람에 모두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숙소 근무자에게 공항에 가방을 돌려줄 것을 당부하고 다음날 돌아오니 안 보인다. 공항으로 보낸 모양이다. 인샬라(Insha Allah). 지금도 기원하고 있다. 우리 일행에 끼어든 가방이 주인인 무하마드에게 무사히 돌아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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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이날 목적지는 숙소에서 3시간가량 가야 하는 빔버 초소다.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 내 산하 10개의 초소 중 하나다. 초소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7개, 인도령 카슈미르에 3개가 있다.
가면서 아침을 먹었다. 달랑 샌드위치 하나와 물 한 병. 그런데 남들이 볼 수 있는 밖에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이기에 그렇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이 관습 때문에 운전하는 파키스탄 병사에게는 대단히 미안했다. 왜? 그 앞에서 열심히 먹어댔으니까.
그렇게 찾아간 빔버 초소에는 3명의 유엔 장교가 있었다. 칠레 대위, 필리핀 소령, 그리고 우리 이은경 여군 대위. 칠레 대위가 초소장이다. 뭔가 이상하다. 소령이 아닌 대위가 책임자라니.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에서 직책은 계급순이 아닌 부임순인 까닭이다.
지난 5월 이곳에 전입해 온 이 대위는 남편도 군인, 여동생도 군인이다. 지금 교육받는 중인데 얼마 후 다른 초소에서 초소장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네 살 된 아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남편보다는 자식이 먼저다.
저녁에는 송종환 파키스탄 대사의 초청을 받았다. 사실 대사도 부임한 지 20여 일밖에 되지 않아 아직 이곳 사정에는 익숙지 않다. 만찬은 이슬라마바드의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렸다. 테러 위협 때문인지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신체 및 수하물 검사가 있었다. 약식 검사이기는 했지만.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의 넓은 8차선 도로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돼 있다는 것은 이런 긴장된 상황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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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유엔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 본부를 방문했다. 감시단 본부는 여기와 인도 스리나가르(5~10월) 두 곳에 있다. 본부는 6개월마다 교대로 운영된다. 감시단에는 단장을 포함해 8명의 한국군이 근무하고 있다.
유엔은 세계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16개 임무단을 파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영범(육군소장) 감시단장은 임무단 지휘관 중 유일한 한국군 장성이기도 하다.
사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카슈미르 문제로 대치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250여 건이 넘는 정전 위반사례가 접수됐다. 신고된 것만 그렇고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하면 거의 매일 총격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명피해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전쟁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돼 순식간에 확대될 수 있는 것이기에 항상 정전감시단은 양국 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내부적으로 아프간 탈레반과의 관계,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진 이슬람 종파 간 문제, 게다가 개인 테러조직 문제도 있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화려한 장식을 한 자동차를 많이 만난다. 일반 승용차를 제외한 나머지 차량 대부분이 이런 장식을 한다. 믿음 내지 부유함을 과시하는 것도 있겠고, 화려함으로 인해 눈에 잘 띄어 교통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파이살 모스크에도 들러봤다. 파이살 모스크는 파키스탄 내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다. 1966년 파키스탄을 다녀간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왕자가 10년간 투자해 지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사원에는 마당을 포함, 총 30만 명의 대중이 들어갈 수 있으며, 터키 양식으로 건축했다. 그런데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벗은 신발을 보관해 주기 때문이란다. 사실상 입장료 같은 신발보관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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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우리끼리 했다. 예전을 생각해 찾은 곳이 카불레스토랑. 확실히 물가는 싸다. 병으로 된 콜라 3개가 1달러밖에 하지 않는다. 양고기 꼬치구이를 9명이 배불리 먹었는데도 6만 원 정도.
16일 파키스탄에서 나와 귀국을 위해 두바이로 다시 돌아왔다. 출국까지 10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여기서 일행 9명은 또 이산가족이 됐다. 4명이 나와 출국장 방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게이트 입구까지 다시 가봐도 보이지 않고, 전화와 카톡도 받지 않았다. 한국 합참에 전화해 업무폰으로 우리에게 전화해 달라고 전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헤어진 일행은 두바이몰에서 상봉했다. 결국 두바이에서 갈 곳은 뻔했다.
이날 두바이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 줬다. 두바이몰에서의 이야기다. 점심을 먹으려는데 문을 연 곳이 없다. 라마단 때문이다. 겨우 찾아낸 곳이 맥도날드. 다행히 외국인에게는 판매한다. 다만 매장 앞에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외국인은 이 자리에서 식사하다가 쫓겨났다. 그래서 사람이 잘 안 다니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장소를 발견해 겨우 식사했다. 바로 그곳은 화장실 옆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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