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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미학' 공감 없이는 예술도 없다

입력 2024. 12. 19   17:08
업데이트 2024. 12. 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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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만나는 예술, 공공조각
좋은 공공미술 나쁜 공공미술

버려진 신발 3만 켤레 전시 내내 시민 반응 싸늘 
한강공원 ‘괴물’ 흉측한 외관 흉물 취급 받다 폐기
공공의 삶 속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설치 전반 충분한 소통…‘대중성·예술성’ 갖춰야

서울로 7017 ‘슈즈트리’. 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로 7017 ‘슈즈트리’. 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도시를 걷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공공미술 작품이 있다. 빽빽한 건물 수만큼 수많은 공공미술 중에서 좋은 공공미술은 무엇이고, 나쁜 공공미술은 무엇일까. 공공미술에 옳고 그름, 혹은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공공미술은 ‘공공’과 ‘미술’이 조합된 단어다. 대중을 의미하는 공공과 사적 차원에서 다뤄지곤 하는 미술이 하나의 단어로 묶인다는 측면에서 애초에 공공미술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미술을 개인적 취향의 반영으로 여긴다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작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공공미술에서 공공의 지향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다. 공적 가치와 사적 미술이라는 경계를 넘어 공공성을 담보하는 보편적인 공공미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좋은 공공미술과 나쁜 공공미술에 관해 생각해 보자.

2017년 5월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해 산책길로 조성한 ‘서울로 7017’을 공식 개방하며 ‘슈즈트리’라는 대형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버려진 신발 3만 켤레가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듯 설치된 이 작품은 높이 17m, 길이 100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었다. 작가는 버려진 신발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우리의 소비문화와 환경의 중요성, 도시 재생 등의 의미를 작품에 담고자 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작품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흉물스럽다, 악취가 난다 등의 민원이 빗발쳤다. 결국 해당 작품은 9일간의 전시를 끝으로 철거됐다. 사실 작품이 설치되기 이전부터 이미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작가와 관계자들은 작품이 완성되면 다른 모습일 것이라며 그들을 설득했다. 작품을 옹호하는 한편에서는 버려진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며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시도로 의미를 봐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 후 설치가 완료됐지만 여전히 차가운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시민들이 작품을 받아들이기까지 9일이라는 시간이 짧았던 탓일까.

‘슈즈트리’ 사례 이전에 소위 미국 미술계의 거장인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 ‘아마벨’도 비슷한 논쟁에 휩싸였다.

1997년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에 자리 잡은 ‘아마벨’은 철강 기업 포스코에서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스텔라에게 의뢰해 설치한 작품이다. 포스코는 새로 사옥을 조성하며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철강 기업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전하고자 세계적인 작가인 스텔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가로·세로 9m, 무게 약 30톤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 ‘아마벨’이 완성됐다. ‘아마벨’은 구겨지고 찌그러진 고철들이 응축돼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듯한 인상이지만, 멀리서 보면 꽃의 형상을 띠기도 한다.

이 작품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작가 친구의 딸 아마벨의 이름에서 딴 것으로, 처참하게 찌그러진 고철 안에서 꽃 이미지가 피어나는 듯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마벨’ 또한 용접된 철들의 육중함과 찌그러지고 녹슨 외관이 흉물스럽다며 철거 요구에 시달려 1999년 철거 이전이 결정됐다.

 

아마벨. 필자 제공
아마벨. 필자 제공

 

철거 중인 괴물 조형물. 사진=서울시
철거 중인 괴물 조형물. 사진=서울시



그러나 미술계의 강한 반대로 ‘아마벨’은 여전히 포스코센터 앞에서 자리를 지키며, 현재는 그 장소를 각인시키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마벨’은 2016년 해외 매체로부터 ‘가장 미움받는 공공 조형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동시에 2016년 메트로신문이 주최한 ‘2016 공공미술 대상’에서 기업 가치를 작품성으로 승화한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한편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2억여 원을 들여 한강공원에 설치했던 공공미술 작품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영화 괴물과 동명인 작품 ‘괴물’은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함에 따라 2014년 한강공원에 설치됐다. 영화 속 괴물을 재현해 관광 홍보에 효과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괴물이 지닐 수밖에 없는 외면적 형상은 오히려 점점 흉물 취급을 받게 되는 조건이 됐다. 서울시는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조형물은 적극 철거한다는 방침에 따라 괴물 조형물을 비롯해 흉물 취급을 받는 공공미술 작품을 철거할 계획을 발표했고, 결국 ‘괴물’은 6월 폐기 처분됐다.

제작 이후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된 장소에서 이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큰 비용이 들어간 작품을 쉽게 폐기할 수도 없거니와 동시에 철거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 작품 존중의 의미 혹은 작가와의 계약 관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작품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폐기된 ‘괴물’ 작품 또한 철거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 다수였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던 터라 다른 활용 방안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결국 설치도 철거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주지 못했다는 결말을 보인 셈이다. 이것은 설치 과정만큼 철거 과정 또한 공론화돼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공공미술은 작품 전반에 관한 소통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위의 사례는 논쟁을 통해 ‘과연 좋은 공공미술은 무엇인가’란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들이다. 또한 모든 사례에서 작품의 외적 형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공공미술의 미적 측면에 대한 대중의 민감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은 추함 또한 예술로 여기는 현대미술 성격이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작품의 미적 형태에 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며 작품이 어떻게 공공의 삶 속에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 변화된다는 것도 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공공미술에 있어 좋은 공공미술로 평가받기 위한 기본 조건은 소통과 공감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담보하며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공공미술 작품은 소통과 공감의 과정을 거치며 점점 좋은 공공미술로 자리 잡아 간다. 공공미술은 그 주체가 공공, 즉 대중인 만큼 우리 또한 관심을 갖고 시간을 들여본다면 더욱 좋은 공공미술이 돼 줄 것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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