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길을 묻다

조직은 나를 따르라 대신 너를 믿어 한순간 무궁하게 빛난다

입력 2024. 12. 18   17:05
업데이트 2024. 12. 1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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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 25. 오명 전 부총리<끝>

지난해 12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으로 시작된 ‘길을 묻다’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해인 수녀, 엄홍길 대장, 김성근 감독, 소프라노 조수미, 정승제 일타강사, 나태주 시인, 김홍신 소설가, 이시형 박사,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가수 인순이 등 각계각층 24명의 명사를 만나 인생이란 길목에서 가야 할 길을 물었다. 그들의 실패와 성공, 철학과 고집, 신념과 믿음, 열정과 사랑은 길을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작은 이정표가 됐다.

길을 묻다의 마지막 인터뷰 대상은 오명 전 부총리다. 오 전 부총리는 대한민국을 세계 제일의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키워 낸 일등 공신이다. 전화기조차 귀하던 시절 체신부 장·차관으로 30년 후의 대한민국을 꿈꾸며 전화 전자교환기 개발, 전국 전화 자동화 사업, 4MD 램 반도체 개발 등 한국 정보통신의 기틀을 닦았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초대장관, 과학기술부 장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국립암센터 이사장, 아주대 총장, 건국대 총장, KAIST 이사장, 동아일보 회장, 웅진에너지 회장, 동부하이텍 회장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중책을 거치며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었다. 이제는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으로 또 다른 30년을 꿈꾸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도 ‘오명’이다. 여든넷의 나이에 여전히 ‘현역’일 수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에게 물었다. 글=송시연/사진=김병문 기자

 

오명 전 부총리
오명 전 부총리



여든넷에 현역일 수 있는 비밀 셋


- 하나, 지켜라
  몰아붙이는 상사 밑에는
  눈치 보는 사람만 늘어
  옛것 받아들여야 새것 쌓아
- 둘, 맡겨라
  실무자가 세부적 상황 더 잘 알아
  미련하게 기다려주고 칭찬하면
  신나게 일할 수 있어
- 셋, 뭉쳐라
  혼자선 전쟁 치를 수 없어
  세상 모든 일은 팀 단위로 굴러가
  한마음일 때 어려운 일 이뤄

그리고 현역 장병들이여… 
지금의 경제 부흥
정보의 사회 복지화
대한항공·아시아나 짧은 시간 고성장
군 역할 있었기에 가능
자부심 가지고 훌륭함 잊지 말길


- 지금도 현역이다. 바쁜 스케줄로 인터뷰 잡기도 쉽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늘도 오전에 회의가 있었다. 젊었을 때 워낙 바쁘게 살아 집사람에게 예순이 넘으면 가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 운명인 것 같다. 오명이 가면 조직이 바뀐다. 국가원로회의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에는 원지원(元智院)을 발족했다. 

“국가원로회의는 후대에 살기 좋은 국가를 물려주기 위해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 원로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33년 됐다. 올해는 한 발 더 나아가 ‘원로들의 지혜를 모은 연구원’이라는 뜻의 원지원을 만들었다. 실질적인 정책의 연구개발로 국가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구성한 싱크탱크다. 사회 각 분야 석학과 전문가 100명이 참여해 인공지능(AI)·디지털시대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상과 정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 처음 관직에 들어왔을 때로 돌아가 보자. 육군사관학교(육사)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가 1980년 마흔의 나이에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됐다. 그러고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으로 부임했다. 그때가 41세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다. 게다가 정통 관료 출신도 아니었다. 한데 어떻게 장관까지 오를 수 있었나.

“직원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체신부가 7만~8만 명이나 되는 조직이었는데, 당시 총무과장이 53세였다. 심지어 시골의 우체국장이나 우편집배원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업으로 치면 차장이 될까 말까 한 나이에 차관이라니. 게다가 공직 경력도 청와대 비서관으로 지낸 8개월이 전부였다. 폐쇄적인 관료사회에서 외부에서 영입된 이사가 자리 잡기란 쉽지 않다. 내 심정이 어땠겠나. 그때 생각했다. 겸손하자고. 이미 이 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 젊은 차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분들을 존경하는 일이었다. 아니, 체신부 전체 조직을 하나의 역사로 존중해야 했다.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바꾸기보다는 지키고자 했다.”


- 보통의 리더들이 새로 부임하면 자신의 방식대로 바꾸려 하지 않나.

“그게 가장 큰 실수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기존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과거의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쌓아야 한다. 기존의 것을 지킨다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어느 조직을 가든 기존에 해 놓은 정책을 최대한 지키려 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취임 첫날 확실하게 긴장감을 심어 주면 조직이 빠르게 움직인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몰아붙이는 상사 밑에서는 눈치 보는 아랫사람만 늘어난다. 눈치 보는 아랫사람은 필요하지 않았다. 소신 있고 일 잘하는 직원을 원했다. 새로운 상관의 등장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직원들에게 리더가 줘야 하는 메시지는 당신들은 잘해 왔고,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뿐이다.”


- 오명 리더십의 비밀인가. 

“나만의 철학이라고 하겠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이다. 사람들은 리더십이라고 하면 조직을 장악해 끌고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부하직원과의 관계다. 그냥 믿고 맡기는 것이다. 현장의 실무자들은 전문가다. 세부적인 상황을 당연히 더 잘 안다. 그러니 실무자의 권한이 정해지면 절대 간섭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게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랫사람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미련할 정도로 기다려 주고 열심히 칭찬하면 된다.”




- 믿고 맡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리더란 전체를 보는 사람이다.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조직 전체의 머리를 빌려야 한다. 개인이 아는 건 한계가 있다. 리더가 세세한 부분을 따지고 있으면 실무자는 의욕을 잃게 되고 리더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장·차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될 수 있는 대로 회의를 줄이고 모든 일을 국장 중심으로, 국장 책임으로 집행했다. 그러자 국장들이 신나서 일했다. 자기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의사 결정도 직접 할 수 있으니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조직의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놨다. 지시와 복종으로 움직이던 직원들이 스스로 찾아서 일했다. 나 자신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믿고 맡기지만 전체 흐름을 꿰뚫어 봐야 하므로 남보다 많이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 오랜 조직생활에서 깨달았나.

“육사에서 배웠다. 육사에 입교하기 전 내 성격은 그야말로 독불장군이었다. 어린 시절 병치레를 너무 많이 해 예민하고 까칠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릴 정도로 남에게 지기도 싫어했다. 맞아서 코피가 철철 흘러도 물러설 줄 몰랐다. 그런 내가 육사에 들어가고 완전히 바뀐 것이다. 거기서 할 수 있는 말은 ‘네, 알겠습니다’뿐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그런데 점점 진심이 됐다. ‘잘해 보겠다’고, ‘잘할 수 있으니 제게 맡겨 달라’고 했다.”


-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육사에서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일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사에서 이기는 기쁨보다 팀의 일원이 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 혼자선 전쟁을 치를 수 없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군대에서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팀 단위로 굴러가지 않나. 가족도, 친구도, 회사도 팀이다. 한마음으로 뭉치지 않으면 좀처럼 이룰 수 없다. 육사에서 동료를 사랑하고, 상급생과 하급생을 대하고 양보·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함께 가는 법을 알게 됐다.”


- 현역 장병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 발전을 이루기까지 군이 굉장한 역할을 했다. 일례로 우리나라 경제 부흥의 한 디딤돌이 된 중동 건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장에 나가면 많은 장비를 운용해야 하지 않나. 현장 근로자들이 장비를 운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능력은 모두 군에서 배운 것이었다. 군은 문맹률을 낮추는데도 한몫했다. 내가 처음 군에 갈 때만 해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했다. 그때는 입대하면 부모님께 드리는 부모님 전상서를 썼다. 못 쓴 사람들은 전부 한글반에서 특별교육을 받았다. 입대할 때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전역할 때쯤 되면 모두 한글을 알았다. 정보를 사회 복지화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내가 동아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국방부에 모든 병사가 정보검색사 2급 이상의 자격을 갖추도록 교육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전 군대가 병사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했다. 병사뿐만 아니라 장교와 그들 가족까지 정보화 교육을 했다. 항공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짧은 시간에 굉장히 성장하지 않았나. 군에서 양성한 조종사 덕분이다. 평화와 안보만이 아니다. 군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축을 담당했다. 물밑에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헌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대들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잊지 마라.”


- 한 해의 마지막이다. 국방일보 독자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이 우리 인간관계를 망치고 있다. 동료가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해야 한다. 사람이 모이면 굉장한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아랫사람을 정말로 아끼고 사랑할 때 강력한 리더십이 형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저무는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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