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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전 연구자에게 듣는다

입력 2024. 12. 17   17:32
업데이트 2024. 12. 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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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전 시대 -
인지전 연구자에게 듣는다

인지전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우리 군과 관련 기관의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토대로 인지전 대응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유사시 국민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글=최한영/사진=조종원 기자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


“적 공격 사실 모른 채 의사결정 마비 위험…국민 마음속 ‘인지 우세’ 가져야”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 

“적의 인지전 공격으로 인해 싸우기도 전에 사회가 교란·분열되고,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이 훼손되고, 민주주의와 정치제도의 정상적인 작동이 막힐 수 있다. 여론 공간이 열려 있고 정부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한 민주주의 체제는 적의 인지전 공격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는 “적이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서 정부·군 지휘부 의사결정이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이 인지전의 가장 큰 위험”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송 교수에 따르면 2016년 전후로 ‘인지전’ 용어가 등장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는 기존 심리전 개념이 인지전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과거 심리전은 일정 기간, 특정 장소·청중을 대상으로 전시에 이뤄졌다. 인지전 개념은 뇌과학·인공지능(AI) 발전이 심리전과 접목하면서 부각됐다. 송 교수는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려는 심리전 수단에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인간의 뇌 작동방식과 AI 내러티브(인식) 기술이 더해지며 인지전의 파괴력이 커졌다”고 부연했다.

기술 발전도 인지전의 중요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지전 수행 방법으로 소셜미디어와 AI 알고리즘을 통해 적국 청중, 나아가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투사하는 것이 꼽힌다. 메시지 전달 속도가 빠르고, 발신 정보량도 상당해 상대국 군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

인지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세계 각국은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군과 정보기관, 외교부처뿐만 아니라 플랫폼 기업 등 민간과도 공조해 적국의 인지전 공격에 맞서고 있다. 송 교수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침공 때와 달리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의 인지전 공격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며 “메타·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서방 플랫폼 기업들이 러시아 소셜미디어에서 운용하는 채널을 ‘셧다운’한 것이 컸다”고 언급했다. 서방 각국 민·관·군이 협력해 러시아발 메시지가 우크라이나, 나아가 서방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순간적인 정보 공격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적이 정보를 발신하는 데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차단하는 전략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우리의 인지전 대응능력은 아쉬운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 송 교수는 군, 나아가 범부처 대응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국내 여론을 흔들고 좌지우지하려는 외부 개입을 포착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를 군과 정부 부처가 분석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필요시 회의를 통해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들 사이에 인지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송 교수는 “국민 마음속에 ‘인지 우세(우월한 상황인식)’가 서 있어야 적의 정보·메시지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며 “국가와 국민이 같은 위기의식과 안보관을 갖도록 어느 정도의 위협정보는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재현 해군중령 
장재현 해군중령 

 

장 중령의 저서 『워리어 마인드셋』.
장 중령의 저서 『워리어 마인드셋』.


“심리전은 인류사 내내 존재…평정심 잃지 않고 임무 완수할 수 있어야” 
합동참모본부 장재현 해군중령 

장재현(해군중령) 합동참모본부 공보실 보도분석담당장교는 바쁜 군 생활 중에도 학업을 병행하며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인지전의 중요성, 유사시 장병들의 심리가 흔들리지 않는 방안을 모색한 책 『워리어 마인드셋(Warrior Mind-set)』을 출간했다.

장 중령이 책을 쓴 이유는 다름 아닌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생존 장병들이 겪은 심리적 어려움을 연구해 논문으로 발간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장 중령은 “군인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무게를 체감하며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공유하고자 결심했다”며 “군인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고 밝혔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연구하며 군인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끌어낼 방안을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인지전의 중요성도 체감할 수 있었다. 장 중령은 “인간 심리 영역에서의 전투는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 왔다”며 “특히 미디어 발전으로 인지전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사회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 군인의 전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현대전이 ‘인간의 마음을 향한 전투’가 되어가고 있다는 판단도 관련 연구를 하고 책까지 펴낸 이유가 됐다. 장 중령은 “전장에서 장병들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공포와 불안 속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며 “우리 군인들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평시에 심리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실전에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중령은 “군인의 뇌는 반복된 훈련으로 명령에 의해 단순하고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신경망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며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군이 장병 심리역량을 높이기 위해 개발·시행 중인 프로그램을 소개한 것도 눈에 띈다. 장 중령은 “미 육군의 ‘종합군인피트니스(CSF)’ 프로그램은 1억2500만 달러(1750억 원)를 투입한 초대형 프로젝트”라며 “미국이 장병 심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큰 예산을 투입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언급했다.

장 중령은 사회 변화, 전장범위 확대 속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책이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적은 우리의 ‘막연한 믿음’을 노리며, 새로운 도발로 장병들의 마음을 흔들 것이다. 이에 맞서 체계적·과학적인 접근과 대응이 필요하다. 장병들이 전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심리역량 기술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장병들이 평시 전투복에 자긍심을 느끼고, 유사시에는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주는 데 책이 작은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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