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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학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사업회장
장병 봉급 공제·부인들 삯바느질 모금
미 해군서 구함정 구입 ‘백두산함’ 탄생
600여 명 승선 북한 무장 수송선 격침
유엔군·전쟁물자 한반도 상륙 일등공신
부친 고 최용남 초대 함장 뜻 기려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사업회 설립
강연·세미나 등 통해 승전 의의 알려
항공모함으로 부활 모금 운동도
최경학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사업회장의 부친은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호국영웅 고(故) 최용남 중령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은 6·25전쟁의 첫 해전인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당일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무장병력 약 600명이 탑승하고 있던 북한의 무장수송선을 격침했다. 전쟁 개시와 동시에 남한의 후방까지 전장화하려던 북한의 기도를 사전에 봉쇄한 것이다. 이 승리로 유엔군을 비롯한 전쟁물자가 부산항으로 무사히 도착했고 이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최 회장은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백두산함과 대한해협해전의 역사를 기억하고 참전 영웅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7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을 만나 백두산함과 대한해협해전이 가진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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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사업회를 어떻게 설립하게 됐는지.
“선친이 생존해 계실 때 ‘대한해협해전 전승 기념행사’를 함께 다녔다. 아마 2년이 채 안 된 시간이었을 거다. 돌아가신 후로는 혼자 다녔는데, 그 자리에서 대한해협해전과 백두산함에 대한 뒷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다. 이걸 기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당시 해군작전사령관이었던 구옥회 중장이 참전 승조원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나라사랑 정신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2013년부터 대한해협해전을 주제로 안보 강연을 다니면서 기념사업회 설립을 준비했다. 그리고 경희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김한상 교수를 초대회장으로 2017년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제가 2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강연과 세미나, 청소년 역사 체험 활동, 백두산함을 한국형 항공모함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모금 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세미나는 2017년부터 진행했다. 첫 세미나의 주제는 ‘백두산함 전투 이야기와 특수부대 전투’였다. 이후 ‘대한해협해전의 의의 & 항공모함 도입 필요성’ ‘미래 해군의 양 날개 잠항과 항공에 대한 새로운 모색’ ‘백두산함정이여 항공모함으로 다시 태어나라’ ‘대한민국판 From The Sea’ ‘해양안보와 해양력 통합발전’ ‘한국해군의 전략 발전과 해양 무인체계’ 등을 주제로 여러 전문가와 함께 대한해협해전을 알리고 해군의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 한국형 항공모함 건조 모금 운동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중국은 랴오닝급 항모를, 일본은 헬기 탑재 호위함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해군력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역 국가인 우리는 안전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바다에서 오는 적은 바다에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항공모함과 함재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함이자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백두산함을 항공모함으로 부활시키려는 이유다. 모금 운동은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2026년 10월까지 1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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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함도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해군 장병과 그 부인들이 봉급의 10%를 내놓고 삯바느질로 돈을 모았다. 나중에는 국민 모금 운동으로 확산됐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미 해군에서 PC-701이라는 구함정을 구입해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가져왔다. PC-701은 지금의 고속함 크기였지만 국민의 염원이 담겼기에 백두산함으로 명명됐다. 백두산함이 해군기지에 도착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 백두산함을 도입하는 데 부친의 역할이 컸다.
“1948년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제독의 지시에 따라 인수 함장을 맡고 인수 준비를 하셨다. 인수 이후에는 두 달에 걸쳐 대한민국 주요 항구를 돌며 전 국민에게 백두산함을 알리고, 자체 교육 훈련을 진행하셨다. 부친은 1923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전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해방 후에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사셨다. 오직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임전태세 유지에 평생을 바치셨다.”
- 대한해협해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50년 6월 25일 우리는 북한군의 기습을 당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될 정도로 모든 전선이 무너졌다. 그때 부산 남쪽의 대한해협에서 놀라운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개전 첫날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이었던 ‘백두산함’이 수시간에 걸친 추적과 교전 끝에 600여 명의 무장병력를 싣고 있던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게 바로 ‘대한해협해전’이다. 북한 특공대가 부산에 상륙했다면 우리는 미군이 오기 전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목숨 걸고 지킨 대한민국이다. 그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지금의 이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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