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Artist Studio ⑮ 김동석 - 질문과 위로를 건네는 작품들
생명·고사성어 등 다양한 주제에 천착
‘예술,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30년간 회화·설치 넘나들며 변화 시도
다만 변치 않은 것은 삶에 대한 질문·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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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작가의 작업실은 경기도 하남시의 조용한 마을 초입 마을회관 1층에 위치해 있다. 빨간색 벽돌 건물의 마을회관에는 작가의 아틀리에와 마을 어르신들의 경로당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1층의 2개 공간을 작업실과 수장고로 사용 중이나 30여 년간 제작해 온 작품들에 대부분의 공간을 내주고 작업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작업실 앞마당에서 대형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면 바로 옆 경로당 어르신들이 호기심 어린 훈수를 두기도 한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환경에서 김동석은 자연을 벗 삼아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다.
김동석은 흔들림 없이 본인의 길을 걸어온 중진 작가다. 1996년 첫 개인전 이래 ‘어머니’ ‘씨앗’을 매개로 생명과 그 근원, 작가의 길을 탐구해 왔다. 이후 ‘우공이산(愚公移山)’ ‘석과불식(碩果不食)’ ‘일수사견(一水四見)’ 등의 주제를 제시하며 회화·설치를 넘나들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질문과 위로를 건네는 등 30여 년간 화업을 이어 왔다. 긴 시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외롭고 고독한 작가의 길을 지속한다는 건 어지간한 의지로는 힘든 일이다. 때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주변의 현자들을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다시 도전해 볼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은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돼 작가의 작업 여정은 그의 인생 파노라마와 다름없다.
김동석은 초창기 어머니, 땅, 길, 씨앗 등을 아우르는 ‘생명’이란 주제에 천착했다. 이후 선지자와 같은 질문, 고사성어 주제 시리즈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메시지를 전해 왔다.
‘길… 어디에도 있었다’ 시리즈는 여행 중 마주한 여러 길에서 방황에 관한 해답을 찾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우공이산’은 남이 보기에 어리석은 일도 끝까지 해 나가면 결국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를 모티브로 제작한 시리즈다. 현실적 삶의 무게에 흔들리던 작가의 마음을 다잡게 한 고사성어로, 본인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는 모든 이가 희망을 놓지 않고 묵묵히 꿈을 실현해 가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일수사견’은 같은 대상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각각 견해가 다르다는 의미로,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느낌표·물음표·이모티콘 같은 기호로 전달되는 현대인의 감정과 의사소통, 저마다의 해석을 다룬 시리즈다. 그의 화제는 작가 스스로 삶의 질문과 답을 이어온 것이자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인생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석은 첫 개인전에서 어머니를 그리는 내용을 한글의 자음·모음을 해체해 재결합한 추상문자 형태의 작품으로 선보였다. 작품은 두툼한 마티에르를 바탕으로 따뜻하고 질박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후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했고, 그 결과를 수십 차례의 전시로 보여 줬다. 주요한 변화 중 하나는 과실 씨앗의 등장이다. 인간의 창조물인 문자로부터 자연의 산물인 씨앗으로 옮겨 가 어머니로 상징돼 온 대지(캔버스)가 생명인 씨앗을 품게 됐다. 이후 화사하면서도 두꺼운 채색이 사라지고 무채색의 시기로 접어든다. 흰색의 바탕 위에 나뭇가지와 잎을 직판화 기법으로 찍어 내고 씨앗 오브제를 붙이며 김동석은 그리고 칠하는 행위를 걷어 냈고, 작가의 흔적이 아닌 자연의 흔적을 화면에 담았다. 사군자 시리즈에선 판각으로 새기거나 찍는 방법으로 다채로운 기법·접근을 선보이며 화면을 창출하는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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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에르는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초기작에서는 패널에 아이소핑크, 흙, 아크릴 물감을 섞어 오래된 판각과 같은 고유의 마티에르를 선보였다. ‘길… 어디에도 있었다’ 시리즈부터는 크리스털의 주재료인 석영을 바탕에 깔아 특유의 화면을 창조했다. 녹이면 유리로 변하는 석영은 고체 상태에서도 색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고운 소금이나 모래 또는 눈을 덮어 놓은 듯한 바탕재는 특유의 질감으로 포근함이 느껴진다. 아크릴·유화물감을 사용해도 투명한 수채화 느낌과 먹의 농담 변화까지 담아냈다. 최근엔 한지에 1㎝ 간격의 색지를 입힌 패널을 세로로 정교하게 설치해 보는 위치에 따라 형체가 사라지는 색면과 색채·이미지가 교차하는 다층적 레이어의 화면을 선보였다. 그에게 작품의 지지체인 바탕재는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근원과 같은 것이다.
작가는 주제와 더불어 표현기법상의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실험 과정을 거쳐 왔다. 환갑을 앞둔 시점, 다시 한번 변화를 시도하며 첫 개인전에서 본인이 출발한 한글로 돌아왔다. 재료적 측면에서도 한지와 먹을 선택해 많은 실험을 펼쳐 냈다. 한지와 먹, 동양화 붓 모두 30여 년간 서양화 재료를 사용해 온 작가에게는 낯선 재료다. 그러나 노련한 작가는 본인만의 방식을 어느새 터득했고 도구도 찾았다. 잘 연마된 붓의 유려함을 피해 싸리비를 이용해 터치감을 살릴 수 있는 본인만의 붓을 제작하고, 넓은 마당에 한지를 펼쳐 두고 숨을 고르고 골라 단번에 획을 그었다. 그가 일필휘지로 그려 낸 것은 ‘한글’이다.
자음·모음을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본인만의 문자체계를 구성한 바 있는 김동석은 이번엔 문자의 조합·재구성 과정을 관람객의 몫으로 돌렸다. 자음·모음으로 해체된 문자는 동양적 재료와 방식으로 화면에 그려진 뒤 다채로운 색과 조형적 요소를 입고 전시장에 펼쳐질 예정이다. 그가 들려주는 언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기호로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미끄러질 것이다. 그러나 정보 전달의 매개체를 초월한 언어는, 더욱 다양한 의미의 층을 형성하면서 관람객의 해석 과정을 거쳐 작가가 설정한 뜻을 넘어 여러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관람자의 경험과 사고, 심리상태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고 발견될 것이다. 작가는 정해진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작가가 풀어낸 문자의 웅성거림은 관람객의 발견에 의해 각자의 울림으로 퍼질 것이다.
김동석은 늘 관람객과의 소통을 지향해 왔다. 난해하지 않은 조형 요소와 방법론을 선택하고,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번엔 소통의 수단인 문자·언어로 관람객 스스로의 메시지를 찾도록 권하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인사동의 갤러리 이즈에서 오는 25일 연말을 따뜻하게 채워 줄 김동석의 개인전이 시작된다. 그가 건네는 대화와 변화를 직접 확인해 보자.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
김동석(1965~)은
추계예대 미술학부 서양화과와 동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2019), 갤러리 이즈(2016) 가나아트스페이스(2014) 등에서 20여 차례 개인전을 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 김해비엔날레국제엑스포(2019), 광복 70주년 대한민국미술축전, 세계미술연맹 5감전(2015)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환기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경기도 박물관, 서울아산병원, 프랑스 대통령궁 등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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