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훈련병의 편지

해병 임강, 한국인 임강

입력 2024. 12. 11   16:16
업데이트 2024. 12. 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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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임강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나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한국인의 피와 외형을 가졌지만, 한국에서 가장 먼 곳에서 한국의 정서를 모르고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한국의 정반대에 있는 페루에서 태어나 자랐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지냈다. 

해외에 살면서 한국의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지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한국이 어딘지도 잘 몰랐는데, 이제는 K드라마를 보고 K팝을 흥얼거린다. 길거리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가 들리고, 한국 연예인이 모델인 광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 나도 한국 문화와 전통, 한국인으로서의 삶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 관해 공부하면서 가슴 깊이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큰 고난을 겪어 왔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선열의 헌신으로 그 고난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외침에 시달린 조국의 모습은 흡사 동양인으로 해외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차별받던 내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그 고난을 이겨 낸 선열의 투지와 용기를 본받고 싶어졌다. 그것을 무기 삼아 차별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대한민국 해병대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해병대가 가장 강한 군대이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하게 입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단체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다 같이 식사하고 양치하는 것부터 자고 일어나면 눈앞에 동기 얼굴이 있는 것까지 교육대에서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긴 야간 과업을 했을 때였다. 동기들과 제식 동작이 맞지 않아 수없이 반복하며 애쓰고 있었는데, 조금씩 동작이 맞아 가면서 소대 모두의 동작에 절도가 생기고 목소리에는 악기가 서렸다. 짜릿한 쾌감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하나’라는 감동이 전우애로 승화돼 가슴에 새겨졌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왜 군인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전우를 구하고, 국민을 보호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꿈꾸던 수료가 며칠 남지 않았다. 동기들과 함께 응원·격려하며 천자봉을 정복하고 가슴에 ‘빨간명찰’을 달았다. 해병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멀리서 날아왔다. 그만큼 정말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사랑하는 부모님, 훌륭한 동기들을 내 손으로 지키고 싶다. 당당한 한국인으로, 멋진 해병으로 만들어 준 교관님들께 감사드린다. 교육훈련단에서 가르쳐 준 애국심으로 해병대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해병이 돼 나라를 지키고, 이제 진정한 한국인으로 새롭게 삶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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