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와삶

작은 따뜻함으로 만드는 우리의 세상

입력 2024. 12. 10   16:01
업데이트 2024. 12. 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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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국방부 군종정책과 공군중령·목사
최윤석 국방부 군종정책과 공군중령·목사


나의 작은 관심이 
어떤 이의 하루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따스함이 되고
그 따스함이 이어져 더 많은 이에게
희망과 위로가 전해지는
순간을 꿈꿔 본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일반인 여성의 강연을 들었다. 경기도가 주최한 자원봉사 우수사례 공모대회에서 ‘선한 영향력 상’을 받은 분이었다. 그녀는 엄마 놀이터인 ‘우물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물가를 ‘엄마들을 웃게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 단체를 운영하게 된 계기를 들으면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네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그녀는 막내딸이 생후 8개월이 됐을 때 수유를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도 우아하게 밥 한 끼 먹고 싶다’. 무려 9년간 모유 수유를 했다고 하니, 그 간절함이 얼마나 컸을까?

막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여유가 생기자 그녀의 눈에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용기를 내 아파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아기를 돌보느라 밥 한 끼도 못 먹는 엄마, 자꾸 눈물이 나는 엄마,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엄마를 찾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남’이 해 준 밥을 드리겠습니다’.

5명이 넘는 엄마가 신청했고, 10명이 넘는 엄마가 뜻을 모아 아이를 돌보고 식사 준비를 도우며 함께 따뜻한 한 끼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힘들었던 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그녀의 용기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단순한 용기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육체적·정신적·경제적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해서다.

오래전 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복불복 미션 후 외쳤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느샌가 이 외침이 우리 일상에 너무 깊이 자리 잡은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모두가 아플 필요는 없다. 남 대신 아파하라는 건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나만 아니면 되는’ 곳이어야 할까? “나는 힘들었지만 잘 견뎌 냈고, 이제는 터널을 지나왔으니 상관없다”는 태도만으로 끝내도 괜찮은 걸까? 때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 괜찮은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괜찮을 수 있는 세상, 그런 거창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괜찮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꿔 보면 어떨까? 내가 겪었던 그 아픔과 외로움의 길을 지금 누군가 똑같이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주상구(同舟相救)’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 배가 부서지면 너나 구분 없이 서로 돕게 된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에 놓이면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게 된다는 말이다. 각자의 사연과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결국 인생이란 바다 위에서 같은 배에 올라탄 존재가 아닐까?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오늘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일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관심이 어떤 이의 하루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따스함이 되고, 그 따스함이 이어져 더 많은 이에게 희망과 위로가 전해지는 순간을 꿈꿔 본다. 세상은 그렇게, 아주 작은 따뜻함으로 조금씩 변해 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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