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열번의 빛나는 역사 열정의 투혼 잇는다 

입력 2024. 12. 10   16:17
업데이트 2024. 12. 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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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작전의 재구성 돌아보기

국방일보는 창간 60주년 캠페인 ‘군, 기 살리기’의 하나로 우리 군의 강력한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군, 기(紀) 세우기’ 프로젝트인 ‘완전작전의 재구성’을 연재했다.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완전작전의 당시 상황과 의미, 현재 이를 이어 같은 장소에서 철저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후배 장병들의 각오를 들어봤다. 앞으로도 완전작전의 역사가 이어지길 바라며, 10번의 완전작전 재구성 기사를 돌아본다. 글=배지열 기자/사진=부대 제공

육군7보병사단 장병들이 9·29 완전작전이 전개된 통문 근처에서 귀순자 유도작전 훈련 중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육군7보병사단 장병들이 9·29 완전작전이 전개된 통문 근처에서 귀순자 유도작전 훈련 중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15보병사단 을지여단 ‘45초 완전작전’


2010년 10월 29일, 육군15보병사단 을지여단 일반전초(GOP)대대의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북한군이 사격해 왔다. 이에 아군 GP도 곧바로 대응 사격에 나섰다. 오후 5시25분38초에 벌어진 적의 도발에 우리 군이 대응한 건 5시26분23초. 이날 상황이 45초 완전작전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당시 부대는 GOP 통합작전 지휘체계를 구축하고, 현장 판단에 따라 ‘감시-결심-타격’을 수행하는 환경을 갖추도록 했다. 지휘부에서 대비태세를 강조했고, 이를 장병들이 망설임 없이 수행했기에 가능한 완전작전이었다. 지금도 장병들은 강원도 철원군 승리전망대에서 ‘45초 완전작전’에 관해 배우고, GP 건물에 남은 탄흔과 당시 투입된 인원들의 이름이 적힌 기념패를 보며 자부심과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31보병사단 ‘여수·임포 대침투작전’

1998년 12월 17일 오후 11시15분, 31보병사단 임포소초는 열영상감시장비(TOD)로 북한의 반잠수정을 식별했다. 공군 항공기의 조명탄 지원 속에 해군 고속정 편대는 기동력을 활용해 적 선박을 포위했다. 지상에서는 상륙 간첩을 소탕하기 위한 차단·수색작전이 이뤄졌다. 이어진 우리 군의 함포사격에 적 반잠수정은 결국 침몰했다.

격침한 북한의 반잠수정을 우리 해군 단독으로 인양하는 성과도 거뒀다. 여러 어려운 조건을 극복한 선체 인양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고난도 작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등 세계에 우리 해군의 우수성을 알렸다.

소초 장병들은 지금도 ‘반잠수정 전시관’과 기념 승전비 등을 돌아보면서 선배 전우들의 기지를 계승해 굳건한 경계태세를 확립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28보병사단 ‘8·20 완전작전’

2015년 8월 20일 오후 3시53분, 북한군의 고사포 포탄이 우리 진영에 떨어졌다. 앞서 4일 북한이 설치한 목함지뢰로 작전 중이던 아군 부사관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 전방의 긴장감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군사분계선(MDL) 북방에 대응사격 명령이 떨어졌고, K55A1 자주포가 불을 뿜었다.

28보병사단을 필두로 보여준 우리 군의 압도적인 도발 대응 의지에 북한은 한발 물러섰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해 왔고, 목함지뢰 도발에 관한 유감 표명도 전했다. 지금도 사단에 전입하는 신입 간부·병사들은 성공적인 전사(戰史)로 8·20 완전작전에 관해 교육받는다. 적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단호한 결전태세를 보여 추가 도발을 막았다는 의미로 우리 군의 좋은 교보재가 되고 있다.



청해부대 ‘아덴만 여명작전’

2011년 1월 15일, 인도양 아라비아해에서 화물선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청해부대 6진 최영함(DDH-Ⅱ·4400톤급)이 긴급 출항했고, 18일 새벽 피랍 해역에 도착해 해적 동태를 감시했다.

당일 1차 작전에 이어 21일 오전 4시56분 2차 작전에 돌입했다. 여명 시간대임을 고려해 해당 작전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명명됐다.

해상작전헬기와 고속단정을 앞세워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한 검문검색대원들이 무장한 해적을 제압하면서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피랍 선원을 구출하면서 작전이 종료됐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우리 국군이 해외에서 전개한 첫 번째 구출작전이었다. 완벽한 전투준비태세와 치밀한 작전계획 수립, 미국을 비롯한 연합전력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 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9보병사단, ‘3·23 완전작전’

1980년 3월 23일 새벽 2시50분, 9보병사단 한강 철책 인근 한 초소. 전날 밤 근무에 투입된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 시야에 미상의 물체가 포착됐다. 바로 초소를 향해 다가오는 3명의 적. 황 일병은 김 이병에게 구산리 소초로 복귀해 상황을 전파하라고 지시하고, 적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해 1명을 사살했다. 나머지 2명은 소초원의 지원 아래 집중 사격으로 제압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사단은 이후 완전작전을 수행한 부대 주둔지와 시설을 ‘황중해 소초’와 ‘김범규 초소’로 명명하면서 이들의 공적을 기렸다. 강둑을 따라 철책을 설치하고 TOD까지 도입하면서 지금도 최상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황중해 소초 내에는 복도를 따라 당시 완전작전 내용과 사진이 기록으로 남아 후배 장병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3보병사단 ‘3·7 완전작전’

1973년 3월 7일 강원도 철원군의 비무장지대(DMZ)에서 MDL 푯말을 수리하려던 3보병사단 장병들에게 갑자기 적 GP에서 기습적인 불법 총격 도발이 가해졌다. 우리 군의 대응사격만으로 적의 도발이 멈추지 않자 사단은 고립된 아군 장병 구출과 즉각적인 응징을 위해 도발 원점을 타격했다. 오후 2시15분부터 6시30분까지 4시간15분 동안 적진에 74발(고폭탄 17발·백린탄 57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화염에 휩싸인 적 GP가 무너지고, 총성이 잦아들면서 전우들도 구출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5년 3월 귀순한 북한군 유대윤 소위는 “북한군 GP에 포탄이 정확히 떨어져 29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날 이후 북한군은 3사단을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25보병사단 ‘사미천 완전작전’

2012년 8월 17일 낮 12시29분, 25보병사단 비룡대대의 한 초소 앞을 흐르는 사미천은 연일 이어진 장마로 수위가 높아져 있었다. 당시 경계근무 중이던 장병들 눈에 남하하는 북한군 모습이 포착됐다. 앞서 탈영한 북한군이 있다는 첩보를 전파받았기에 모든 감시장비를 가동하고 수색대대 기동타격대까지 현장에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결과적으로 귀순자를 성공적으로 유도했다. 수중에 유기한 소총과 수류탄·탄약까지 회수하면서 상황이 마무리됐다. 자칫하면 탈영병을 잡기 위해 투입된 적과 무력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던 위기에서 빈틈없는 근무태세와 신속·정확한 조치로 ‘사미천 완전작전’이 완성된 것.

사단은 이후에도 매년 8월 셋째주를 ‘사미천 완전작전 상기 주간’으로 지정하고 완전작전 당시 상황을 되새기면서 실전적인 교육훈련과 정신적 대비태세 확립에 매진하고 있다.



7보병사단 ‘9·29 완전작전’

2016년 9월 29일 오전, 7보병사단 불사조여단의 작전 지역 내 남방한계선 철책 통문 전방 DMZ에서 귀순자 1명이 식별됐다. 영상감시병이 카메라로 상황을 인지했고, 초소 근무자도 동시에 육안으로 이를 확인했다.

초동조치분대와 귀순자 유도조가 급파돼 협조하면서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장병들은 귀순자를 신문하고 방첩부대에 신병을 인계하는 절차까지 문제 없이 완수했다.

9·29 완전작전은 과학화경계시스템을 귀순자 유도작전에 활용한 첫 번째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당시 대북 심리전 방송이 재개된 이후 첫 귀순이라는 점에서 심리전 간접 효과를 검증하는 성과를 남겼다.

사단은 지난해 9월 29일 작전을 펼친 통문 앞에 기념석을 세워 자랑스러운 완전작전 역사를 기억하도록 했다.



3보병사단 ‘5·22 완전작전’ 

1992년 5월 21일 밤 8시45분, 강원도 철원군 전방에서 북한군 11명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인접해 있던 3보병사단은 상황을 전파받고 적의 이동을 추적·감시하면서 침투 징후가 농후하다는 판단 아래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결국 3명의 북한군이 MDL을 넘었고, 사단은 바로 탐색·격멸작전에 돌입했다. 다음날 새벽 2시50분 GP 차단조가 차단 지점을 점령했고, 은하계곡에서 맞닥뜨린 적을 전원 사살했다. ‘은하계곡 완전작전’으로도 불리는 5·22 완전작전은 야음을 틈타 DMZ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적을 사살한 우리 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침투작전으로 손꼽힌다. 사단은 매년 기념행사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상기하고, 강력한 대응으로 적을 섬멸한 선배 전우들의 백골정신과 완전작전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보병사단 ‘7·16 완전작전’

1997년 7월 16일 오전 9시35분, 강원도 철원군 전방에서 단독무장한 북한군들이 MDL 쪽으로 남하했다. 이 모습은 3보병사단 GP에서 최초로 관측됐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을 향해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이동하던 적들은 아군 GP에 조준사격하기 시작했다.

우리 군도 즉각 대응사격에 나서면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사격이 중지되고, 적 GP에서 구급차가 진입했다가 떠나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아군은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시설물 일부만 피해를 봤다.

장병들은 다양한 감시 수단으로 적의 활동을 놓치지 않고 추적·감시했다. 교전규칙과 DMZ 지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던 덕분에 갑작스러운 도발에도 강력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평소 도발 유형별 즉각조치 모델에 따라 실전적 교육훈련이 이뤄진 것도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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