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자충수가 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입력 2024. 12. 09   15:48
업데이트 2024. 12. 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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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북한 김정은은 “대한민국은 통일 대상인 동족이 아니며,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에서도 민족, 통일, 화해 등의 표현을 삭제하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와 ‘국경 조항’을 삽입하는 개헌을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통일 관련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민족경제협력국·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들을 해체하거나 개칭했으며, 북한 애국가 가사에서 ‘삼천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평양 지하철에 있는 통일역의 이름도 바꿨다. 개성공단에 전력을 보내 줬던 송전선도 잘랐다.

이와 함께 선대 지우기와 김정은 우상화도 진행형이다. 김일성의 유훈이 서린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했고, 태양절도 ‘4월 명절’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조치는 당장은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정권에 내상을 입히는 자충수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 관계 단절을 선언한 이유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젊은 세대에서 확산하는 권력세습의 정당성 회의론, 핵 개발과 군사력 증강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에 대한 인민들의 원성, 자유를 향한 엘리트층의 탈북 등으로 체제 균열을 막아 보겠다는 몸부림이다.

둘째, 내부 단속을 위한 외부 긴장 조성이 필요해 도발 명분을 쌓고 있다. 이를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국경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셋째, 대남 핵 위협을 정당화하려 한다. 한국을 ‘통일 대상인 동족’이라고 하면서 핵 사용을 위협하는 것에 북한 인민들도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한국에도 엉뚱한 혼선을 불러일으켰다. 주체통일을 심중에 두고 연방제 통일,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민족 자주 등을 요구해 온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동조하는 언행을 하면서 이를 ‘평화통일의 길’로 위장했던 주사파 인사와 단체들은 ‘위장용 간판’을 상실했으며, 대북 유화론만이 ‘통일의 길’이라고 선전해 왔던 이들은 평생 펼쳐 온 논리를 바꿔야 하는 처지가 됐다.

북한이 한국을 ‘정복 대상’으로 선언한 마당이라 “확고한 안보가 진정한 의미의 남북 상생 기반”이라고 설파해 온 안보론자들을 ‘반통일세력’으로 매도하기도 어려워졌다.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전임 정부의 요직을 지낸 전대협 출신 모 인사가 지금까지 자신이 해 왔던 발언을 부정하고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두 국가론을 수용하자”고 한 것은 그들이 겪는 혼란과 고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발언이었다.

북한이 겪어야 할 혼란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동안 ‘민족통일’은 북한의 지상과제이자 김일성의 유훈사업으로서 인민들을 수령 독재체제에 묶어 두는 유용한 세뇌도구였다. 권력세습 독재의 최대 수혜자인 김정은은 이를 폐기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훼손하고 있다.

김일성을 존경하면서 체제에 충성해 온 권력층은 선대의 유훈을 폐기하는 조치에 실망과 혼란을 느낄 것이며, 외부 세계를 동경하는 젊은 층은 더욱 깊은 좌절감을 맛볼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느닷없는 ‘두 국가론’과 선대의 통일 유훈 부정은 당장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세습 독재의 정통성을 갉아먹는 자충수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사태는 한국의 안보에 희소식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도발 동기가 더욱 강해질 수 있어서다. 정부와 군은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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